실향(失鄕). 지난 2014년, 30여년 만에 개방된 이래 화순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은 적벽의 화려함 이면에는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고향을 잃어야했던 실향민들의 아픔이 새겨져있다. 당시 거주 중이던 이서 거주민 약 600여 가구 3천여 명은, 홍수를 핑계로 한 담수로 인해 말 그대로 탈출하듯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후 전국 각지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이들은 관계기관을 상대로 목숨을 건 투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실향의 한을 달래왔다.

본지는 이들을 대표하는 김광진 동복댐 이주민협회장을 만나, 그동안의 아픔과 투쟁사 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 동복댐과 이주민에 대해
동복댐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화순군민과 광주광역시민의 중요한 식수원으로, 1985년 섬진강의 지류인 동복천에 높이 44.7m, 길이 188m의 규모로 세운 댐이다. 1970년부터 1985년까지 이서면과 북면 15개 마을 약 800 세대 6000 여명이 동복댐 건설로 인한 이주민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먼저 떠난 사람까지 합하면 일만 명 정도가 된다. 현재 직계가족을 합하면 삼만 명의 이주민 가족이 전국에 살고 있다.
원래 1971년에 광주광역시가 건설한 높이 19.3m, 길이 133.8m의 구 동복댐이 있었으나, 광주광역시가 상수도 용수 수요의 증가에 대처하기 위하여 광주광역시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금의 동복댐을 1982년 11월부터 1985년 7월 사이에 건설하였다. 만수 면적 6.61㎢, 총 저수용량 9900만㎥, 하루 30만㎥의 상수도용 원수를 광주광역시에 공급하고 있다. 화순군 상수도는 1977년 시설 용량 4,000㎥/일의 정수 시설을 준공하여 동복댐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아 정수 생산을 개시하였으며 2001년부터 급속 여과 공정으로 시설을 변경 및 증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1985년 5월, 갑자기 물이 차 산으로 피신한 주민들, 배가 오기를 이틀 동안 기다렸다.

◇ 갑작스러운 이주로 인한 멍든 가슴
동복댐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과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협약서 6조에 명시된 이주 단지도 보장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심각한 재산권 침해와 인권이 유린된 가운데 건설되었다. 멍든 가슴을 부여잡고 정든 고향을 수장시킨 채 타향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우리 만여 명의 화순 동복댐 이주민들은, 물속에 잠긴 70년대의 북적거렸던 이서 장터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 고향 잃은 이들을 위한, 망향 동산
1985년 5월 7일 전두환 군사정권의 청천병력과도 같은 갑작스러운 동복댐 담수로 수많은 동복댐 실향민들이 아비규환의 차오르는 흙탕물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 후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한을 품은 채 잔디 뿌리처럼 오롯이 살아왔다.
1999년 3월 3일 첫 삽을 뜬 동복댐 이주민협회 초대 회장이신 고 해관 장두석 선생님을 비롯한 500여 명의 동복댐 이주민 1억 원의 성금과, 김영삼 대통령의 김광일 비서실장의 13억여 원의 도움 및 광주광역시 3억 6천의 지원을 받아 우리가 우리를 위해 조성한 적벽 망향동산을 바라보면서 향수를 달래 왔다. 15년부터 4월 셋째 주 토요일이면 우리는 적벽 망향동산에 모여 얼싸 안고 한산사를 바라보며 먹고 마시는 70년대 이서 장터의 따스한 정을 나누는 봄꽃 화전놀이며 적벽 낙화놀이인 적벽 애향 축제를 개최해왔고 올해 2020년 4월 18일 6번째를 맞이한다.

◇ 광주광역시와 지난한 투쟁과 화해
동복댐 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우리 협회는 동복댐 관리청인 광주광역시와 지난한 투쟁을 해왔다. 동복댐 이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목소리를 내며 동복댐 내에 산적한 문제를 지금까지 하나하나 해결해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 이주민들은 때론 목숨도 내걸며 투쟁에 앞장섰다. 당시엔 기나긴 갈등으로 입장 차를 줄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고 지치기도 하였지만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과 황봉주 상수도사업본부장이 들어서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상생과 화해의 길을 걷고 있다. 온정 어린 사랑의 화롯불같은 광주광역시의 지금의 협조가, 1980년대 동복댐 이주 과정에서 벌어졌던 심각한 인권과 재산권 침해로 차갑게 얼어있던 우리 이주민들의 마음을 서서히 녹여주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
2020년엔 우리 동복댐 이주민협회와 광주광역시는 돈과 규모는 철학의 문제인 만큼 상관하지 않고, 협약서 6조 이주 단지를 대신해 이제라도 동복댐 내 경치 좋고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실향민 게스트하우스를 지을 것이다. 이주민들이 고향을 수장시킨 한과 설움을 달래고 하룻밤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쉴 수 있게 할 것이다.
협약서 7조 3항에 명시된 동복댐 내 산림도로를 35년이 지난 올해부터 개설해 그동안 진입로가 없어 무용지물이었던 300 만평의 임야와 토지에 오염원이 없는 약초나 수익을 낼 수 있는 좋은 나무를 심을 것이다. 제1 망향정 보수 공사와 제2 망향정 확장공사를 할 것이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옛 신작로와 오솔길을 복원하는 순찰로 사업을 할 것이다.
서울, 경인, 부산, 영남지역으로 흩어져 있는 동복댐 이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누구나 공감하는 저렴한 비용으로 벌초 길 개설과 벌초 사업도 진행할 것이다. 이주민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정효자를 향토문화유산으로 등재해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효와 우애를 다시 회복시키는 교육의 산실로 만들 것이다.
또한 이주 당시 동복댐 물이 갑작스럽게 담수가 되어 정신없이 이주했기에, 동복댐에 수장된 255필지 20500 평의 보상안 된 토지에 대해 댐 관리청이 보상을 하도록 할 것이다.

◇ 화순군과 이서면에 드리는 부탁
적벽 망향동산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조성했고 우리 동복댐 이주민들만이 출입을 했던 우리의 성지였다. 40만평에 달하는 그런 적벽 망향동산을, 우리는 오직 화순군의 발전을 위해 2014년 광주광역시를 설득해 조건 없이 화순군이 관광투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니 이제 화순군이 적벽에 관해 주체성을 가지고 우리 협회와 협력해 전기 개설과 도로확장 및 포장 그리고 옹성산 정상을 관통하는 케이블 건설로 웅장한 미래 적벽의 관광 청사진을 그려주셨으면 한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댐과 인간과 관광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마인드로 적벽을 공원화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외에도 적벽 40만 평만 생각하지 말고 동복댐 실향민들의 300 만평 토지도 화순군 토지이니 애정과 관심을 듬뿍 가져주시길 바란다.
또한 이서면에 부탁드린다. 2002년부터 동복댐 내 토지에 대해 의무는 이행하지 않은 채 댐법에 의한 주변지역 지원사업비와 영산강 법에 의한 주민지원사업비와 같은 과실만을 생각하는 대신, 이제라도 동복댐 내 300만 평의 실향민 땅 역시 이서면 땅임을 인식하고 고민하시길 부탁드린다.

◇ 이주민협회, 배려와 사랑으로
그간 우리는 갈등과 상처가 너무 많았다. 실향 자체가 아픈 기억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투쟁하고 싸우던 시기가 길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서로 진정 사랑해야 한다. 머리가 아닌 끓는 심장으로 말이다.
우리는 이제 말이 아닌 진심으로 서로 배려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실수와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포용하고 보듬고 용서해야 한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역지사지하면서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내 것을 줘도 하나 아깝지 않고 더 못줘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화순 동복댐 이주민 협회는 원칙을 가지고 멋있게 나아갈 것이다.
우리 화순 동복댐 이주민협회를 사랑하시고 응원하시는 모든 분들이여, 우리 모두 다 같이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함께 써 나가길 바란다.
사랑과 배려, 나눔과 용서와 화합이 용솟음치는 한산사 절터의 맑은 우물물을 함께 마실 때가 기억난다. 훈훈한 정이 오갔던 이서 5일장의 모락모락 김 나는 국밥과 붕어빵을 함께 먹을 때 또한 기억난다. 그리고 먼 훗날 기억할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조성했던 적벽 망향동산에, 모두 함께 화해와 화합의 모닥불을 활활 피울 때일 것이다.

화순 동복댐 이주민협회 적벽 애향 봉사단, 마을 회관청소 봉사 활동 및 쌀 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