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올 가을 유난히도 과일이 풍년이라고 한다.
시장 어디에 가도 과일 일색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엔 어김없이 과일을 가득 실은 소형 트럭이 자리잡고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바쁘다. 어느 과일 차나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나나이다. 바나나는 원래 수입과일로서 수입 초기에는 부유층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었으며, 어려운 처지의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바나나 한 손 사들고 가면 그런대로 인사치레가 될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부터 바나나 수입을 했다고 전하고 있는데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과일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수입 과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바나나를 첫 수입하던 해 가을 어느 날 아버지 회갑기념으로 부모님 서울 구경을 시켜드리기 위해 승용차 포니 한 대를 빌려 부모님을 모시고 서울에 갔다.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서울 명소를 찾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어느 가게에 들려 아버지 담배와 바나나 두 개를 사서 아버지 어머니께 드렸다.
“이것이 무엇이다냐? 꼭 어름같이 생겼다.”
“예, 먼 나라에서 온 바나나라고 하는 과일인데요. 이렇게 잡수면 됩니다.” 하며 껍질을 벗겨 드렸다.

생전 처음으로 바나나 하난를 잡수고 하신 어머니 말씀이다. “아니, 무엇이 이렇게도 맛난 것이 있다냐? 입에다 넣자마자 그냥 넘어가 분다.”
이 같은 어머니 말씀은 지금 생각해봐도 입가에 미소가 돈다.

우리나라에서 초콜릿을 가장 먼저 먹어본 사람이 아마 명성황후일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 공사 부인이 외교의 일환으로 양화장품과 양과자를 명성황후에게 바쳤다는데 그 중에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하니 이것 또한 추측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언제부터 전해져 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고 하는 발렌타인데이가 2월 14일로 정해졌고, 11월 11일은 1자만 네 번을 쓴다고 해서 빼빼로를 선물하고 먹는 날로 빼빼로데이라고 한다’ 하니, 이것은 모두 초콜릿을 많이 소비시키기 위해 제과회사가 만들어 유행시킨 경영 수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 동양제과와 해태제과에서 초콜릿을 만들었다고 하며 롯데제과에서는 1983년 국내 처음으로 초콜릿을 이용해서 빼빼로를 생산했다고 한다. 빼빼로데이를 며칠 앞두고 가게나 상가에는 빼빼로 장식이 크게 눈에 띄고 있다.

작년 설날 내 차에 형님을 모시고 고향에 가면서 6·26 전쟁 때 읍내로 피난 나와서 어렵게 살았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형님은 어는 날 운이 좋게도 미군들이 던져준 무언가를 하나 주워 가지고 어머니께 드렸더니 어머니가 보시고 “아니, 그 사람이 어떻게 네 머리에 부스럼이 난 줄을 알고 고약을 너한테 주었다냐?” 라고 하시며 까만 초콜릿을 고약으로 알고 형님 머리에 난 부스럼에다 붙였다는 이야기에 모두 웃었다.

‘모르는 것은 손에다 쥐어줘도 모른다’ 라는 옛말이 있다. 생전에 한 번도 보지도 못한 고약같이 까만 초콜릿을 사람이 먹는 것인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래서 고약으로 잘못 알고 부스럼에다 초콜릿을 붙였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다.

어제 푸른길 산책을 다녀오다 바나나를 가득 실은 소형트럭을 보았다. 트럭에서는 스피커를 통해서 “맛좋은 바나나가 왔습니다. 한 손에 3천 원 두 손에는 5천 원에 드립니다.” 하며 큰소리로 손님을 부르고 있다.

저렇게 많은 바나나를 언제 다 팔 수 있을까? 염려하며 돌아오는 길에 잠시나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무엇이 이렇게 맛난 것이 있다냐? 입에다 넣자마자 넘어가 분다.” 이렇게 맛난 것 한 손을 사드리지 못했던 것이 못 다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빼빼로데이를 이틀 앞두고 퇴근길에 손주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또 해 줄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 초콜릿을 처음 본 할머니가 초콜릿을 고약으로 알고 머리에 난 부스럼에다 초콜릿을 붙여 주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 놈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생각하면서 퇴근길에 혼자서 가만히 미소 지어 본다.(2017. 11. 10)

김동기 프로필
1945년 화순 동복 출생
남화산업(주) 재직
2018, 「아시아서석문학」수필부문 등단
<<수필집>> 『바나나와 초콜릿』
<<연락처>> 010-4006-8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