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
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 원 아니면 3천 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굿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
호는 이산(怡山).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생. 1926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 에 입학하여 27년 와세다대학 동창회지 《R》지(誌)에 첫 작품 《모기장》을 발표했고 28년 정인섭(鄭寅燮)과 함께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했다. 33년 귀국하여 모교인 중동학교 영어교사로 있으면서 박용철(朴龍喆)·이웅(李雄)·유형목(兪亨穆)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 버나드 쇼의 《무기와 인간》을 번역·상연하는 한편, 평론 《연극운동과 극연(劇硏)》 《애란연극운동소관(愛亂演劇運動小觀)》 《1년 동안의 극계 동향》 등을 발표했다. 중동학교 재직중 아일랜드의 시를 강의하면서 반일(反日) 민족사상을 고취했다 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3년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 상당기간 문화계·관계·언론계 등에서 활동하는 한편, 45년 <중앙문화협회> 창립, 46년 <조선문필가협회> 창립, 47년 《민중일보(民衆日報)》 편집국장, 48년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동경(憧憬, 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 1971)》 등 시집을 통해 주지적(主知的) 시인으로 알려졌고, 작품에는 지성인이 겪는 고뇌와 민족의식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엄태선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