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혼혈인은 그 자체만으로 멸시를 당하기 일쑤다. 1990년대 이후로 한국의 이른바 3D 업종에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대거 취업하면서 이들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이 늘어나고 한국인 남성과 동남아 이주여성과의 국제결혼이 급증하면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배타적인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알게 모르게 겪어야 하는 문화적 갈등과 소외문제는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중 주로 초등학생이 많은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들이 자라 20~30세가 되는 2040~50년 무렵이면 우리 사회도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니라 다민족국가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

혼혈인 가정에 따뜻한 마음을 주어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고, 혼혈인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보면서 춘양면 월평리에 사는 필리핀 이주여성 알렌스 알레신도(29)를 통해 느껴본다.

40여 가구의 주민들이 다정다감히 모여 서로 의지하고 있는 춘양면 월평리.
지형지세가 좋아서인지 유난히들 서로 챙겨주며 모든 일을 내일처럼 서로 챙겨주는 곳.

저 멀리 필리핀의 작은 면소재지라고나 할까... ‘마타안 오란니’라는 작은 마을에 구두를 만드는 한국공장이 들어서면서 한국에 대한 이상(理想)이 생겼다.

운명이었을까...그때 결혼상대자를 찾는다며 한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12남매속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생활을 함께 꾸려나가야 하는 책임감은 부자나라 ‘한국’이 그저 반갑고 이상을 품어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했다.

알렌스는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춘양초등학교에서 급식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임한다.

2001년 12월 9일…알렌스, 드디어 한국에서의 생활 시작하다
2001년 12월 9일. 22살의 나이로 춘양면 월평리에 둥지를 틀게 된 미소가 아름다운 알렌스의 생활이 시작된다.
물론,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들을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나의 희생(?)으로 가족에게 보탬이 된다면 포기할 수 없었다. 남편은 친정에 오토바이를 사주고 시어머니는 친정에 몇번의 송금을 해주기도 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의 생활. 부자나라로 알고 있었지만, 시골마을로 시집온 알렌스의 눈에 비친 건 필리핀에서 상상했던 이상과 동떨어진 생활이었다. 필리핀 한국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말 몇마디는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

역시나 크게 힘들었던 것은 말이 통하지 않은 것과 음식의 차이. 처음에는 고기나 과일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말이 먼저 통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누이가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책으로 글자를 익혀나갔다.

“아들이 필리핀에서 20일 머물다 며느리랑 같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작고 어린모습을 보니 부모형제를 떠나 먼 타국으로 시집온 당시의 모습이 그렇게 가엽고 짠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회고한다.

이런 시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은 알렌스의 마음을 금방 열어놓는다. 음식도 자신의 입맛에만 맞출 수 없는 일...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옆에서 눈여겨보는 알렌스는 금새 다음 번에는 상에 내놓을 정도로 솜씨 빠르게 익히고 배우는 것을 즐거워했다. 외국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한번 가르쳐 주면 금새 습득하는 생활모습에 기특하면서 그렇게 예쁠수가 없고 안쓰러움이 더해갔다.

혼자서 공부하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며 '말이 먼저 통하려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을사람들을 한 두명씩 집으로 초대했다. 혹시나 며느리가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면 어쩌나하는 우려속에...

시어머니는 알렌스가 화순에서 정붙이며 기쁨을 갖고 사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내부모, 덕분에 행복합니다~
감사하게도 알렌스는 너무도 적응을 잘해주었다. 예쁘디 예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음식을 만들어내고 차를 대접하면서 오히려 마을 어르신들이 찾아와주는게 고맙다고 한다.

식혜, 잡채 등 다과요리는 물론이고 김치도 아주 잘 담궈 이제는 제사음식도 혼자 다 마련할 정도다. 시골의 형편이 다 그렇듯이 집안일은 당연하고, 논밭일이 끝도 없지만, 고추농사를 비롯한 논,밭에서 일한만큼 얻어지는 소득이 생기는 재미가 좋아 힘든 내색없이 더 욕심껏 일도 잘한다.

뿐만 아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춘양초등학교에 급식봉사도 하고 있다.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성훈(6), 미선(4)이와 함께 아침에 서둘러 학교로 향하는 즐거움도 좋다. 혹시라도 다른 아이들과 약간 다른 모습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나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준비하며 집을 나선 후, 8시 30분부터 시작한 학교급식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아이들과 함께 집에 도착하면 오후 3시경. 이때부터는 또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친정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시어머님, 가족을 위해 늘 열심히 일하는 남편, 무엇보다 밝고 적극적인 성격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들은 필리핀에 사는 여동생에게도 한국으로 시집오라고 권유를 할 정도다.

시어머니는 항상 싫은 내색한 번 하지 않고 웃음 지으며 부녀회 활동이며, 마을잔치때도 제일 먼저 솔선수범으로 나서고 청소며 설거지 등 궂은 일을 먼저 추켜들고, 또 마을 어르신들에게 늘 먼저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기면서 칭찬을 받고 있는 며느리가 그저 자랑스럽고 너무 고맙다고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성훈(6), 미선(4)이는 밝고 적극적이며 예의바른 애들로 온 동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혼자만 좋아서는 못살아… 서로 잘해야 화목할 수 있어
이주여성 정착위해 외국인센터의 효율적 프로그램과 가족들의 상호이해가 있어야
화순에도 외국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많은 데 가본적 있냐는 물음에 없다고 한다. 성격탓도 있지만, 선입견도 많다. 특히, 시어머니는... 사실 관내 외국인들이 시집와서 알렌스처럼 잘 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힘들고 적응이 어려워 아이들도 자신의 방식대로 양육이 되면서, 점차 아이들의 정체성이 흐려진 것도 사실. 알렌스는 이주여성들이 정착에 힘들어 하는 것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시댁식구들은 왜 이러느냐, 잘해봐라, 언제까지 똑같은 상황이냐는 질책이 이어지면서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외국인센터나 봉사활동 등 밖의 일에만 관심이 쓰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는 것...

“사람이 혼자만 좋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좋아야 화목하고 가정이 잘 이루어진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머릿속에 맴돈다…

알렌스는 새벽5시부터 하루일과를 시작해 학교급식은 물론 집안일과 아이들 양육, 농사일등 가리지 않고 가족을 위해 그저 열심히 할 뿐이라며,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