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민신문=강주성 기자] 23년 3월 취임한 박광재 조합장은 “명품 농협”을 선언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조합원을 위한 농협”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은 외형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흔들리고 있다. 화순 도곡농협의 최근 3개년 경영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농협 본연의 경제사업보다 금융사업에 치중하는 경향이 심화되며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겉도는 경제사업, 금융수익에 기댄 ‘빛 좋은 개살구’
박 조합장 취임 전인 22년 말, 도곡농협의 총자산은 1,716억 원이었다. 이후 총자산은 23년 말 1,894억 원을 거쳐 24년 말 1,908억 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수익 역시 438억 원에서 496억 원으로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12억 원대를 유지하며 외형적으로는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성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전체 영업수익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사업 수익은 22년 383억 원에서 23년 370억 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가 24년 409억 원으로 소폭 회복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신용사업(예수금·대출 이자 및 수수료) 수익은 22년 55억 원에서 24년 87억 원으로 60% 가까이 급증했다. 성장분의 대부분이 조합원의 농업 활동 지원이 아닌 금융 이자·수수료에서 비롯된 것이다. “농협이 아니라 마을금고 같다”는 조합원들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자산 건전성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서병연 전임 조합장 시기인 22년 말 0.37%에 불과했던 연체대출금 비율은 24년 말 1.39%로 4배 가까이 치솟았다. 반면, 부실에 대비하는 대손충당금 비율은 22년 115.48%에서 24년 110.61%로 오히려 하락했다. 위험 자산은 늘리면서 안전장치는 줄인, 고위험 경영으로의 전환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3년 내 흑자’ 공약, 출발선에서 맴돌다
박광재 조합장은 선거 당시 스마트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라이스센터(RPC)· 로컬푸드스마트팜을 “3년 안에 흑자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사업 매출 목표 달성률은 23년 1분기 21.9%로 저조하게 출발해 24년 3분기 75.8%를 기록했으나, 25년 1분기에는 다시 24.4%로 곤두박질쳤다. 이 세 시설은 건설되었을 때부터 올 1분기까지 단 한 번도 분기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이들 사업은 박 조합장 취임 이전부터 추진된 사업으로, 적자 상태로 사업을 넘겨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 조합장은 이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금은 회수되지 못한 채 감가상각비와 관리비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23년 1분기 손익계산서를 보면 신용사업 이익(12억 1천만 원)이 경제사업 이익(11억 8천만 원)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는 경제사업 전체 실적에 세 시설의 막대한 손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조합원들의 예금으로 불어난 신용사업 수익이 경제사업의 적자를 메우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를 위한 농협? 소외되는 조합원들
문제의 핵심은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이다. 로컬푸드 직매장, RPC 등 핵심 경제사업은 일부 대규모 출하 조합원에게 혜택이 집중될 뿐, 대다수 고령·영세 조합원들은 진입 장벽에 막혀 소외되고 있다. 이들에게 농협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일 뿐, 실질적인 영농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배당 구조 역시 이러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예금액에 따른 배당보다 출자금 규모에 따른 배당 비중이 커, 자본이 많은 조합원에게 이익이 쏠리는 구조다. 협동조합의 핵심 가치인 ‘조합원 중심의 민주적 운영’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요 사업계획과 예산안 대부분이 소수 이사회에서 결정된 뒤 총회에서는 형식적인 보고와 통과 절차만 거친다는 지적은 도곡농협의 폐쇄적인 운영 실태를 보여준다. 조합원들은 “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명품 농협’이라는 화려한 슬로건은 조합원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박 조합장에게 남은 임기는 1년 남짓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품’이라는 수사가 아니라, 회계 장부 속 적자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합원과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이다. 조합원의 예금으로 쌓아 올린 ‘큰 몸집’이 더 큰 부담으로 전락하기 전에, 도곡농협은 금융기관이 아닌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숫자로 증명해야 할 때다.

한편 도곡농협 관계자는 “24년도 경제사업 부문의 이익 지표가 부진한 것은 지난해 일조량 피해로 농산물 매출이 감소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조합원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현 조합장과 임직원들이 논콩 재배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