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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 옛길의 봄
작성 : 2021년 03월 02일(화) 10:42 가+가-

정혜진

전남여류문학회장

생명의 봄이 우리 곁을 바짝 뒤쫓아 왔다. 금방 추월할 기세다. 정확한 숫자판초침도 없으면서 오직 365초롱 바늘(초롱초롱 빛나는 햇볕시계바늘)이 해시계를 믿고 따른 결과다. 산자락엔 노란 복수초가 자리를 잡고 앉아 봄 입김을 전한다. 성급한 매화 꽃망울과 산수유꽃도 봄소식을 품고 일어나 들썩거리고 있다.

여느 겨울과 달리 유난스럽게 펑펑 쏟아지던 폭설조차 힘을 잃게 만든 봄기운이 움츠렸던 일상에 활력을 줄 기대감이 그저 반갑다. 언 땅이 녹으면서 풀린 흙을 밟아가며 밭 거름을 뿌리고 있는 농부의 발길도 희망 메시지다. 머뭇거림 없이 땅따먹기에 사활을 건 풀들은 벌써부터 논밭 일부분을 초록으로 색칠해나가기에 바쁘다. 이젠 산도 들도 정신건강에 좋은 「걷기」를 내세워 우리를 유혹한다. 중국의 장주는 「사람은 대자연의 무궁한 품속에서 자유로이 노닐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수려하고 완만한 산이 많아 지역 대부분을 감싸 안고 있는 우리 화순은 그래서 봄소식과 함께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인다. 광주와 경계를 이룬 너릿재 옛길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찾아든 사람들과 산악자전거 동호인들까지 애용해온 곳이다. 더구나 2020년 11월 『전남 대표 숲길』로 선정되면서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음도 고마운 일이다. 「걷고 싶은 전남 숲길 공모」에서 광주와 접근성이 좋고 구절초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아기단풍 등 아름다운 풍광이 돋보인 데다가 여행 트렌드에 맞게 산림복지 서비스가 잘 되어 있는 점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너릿재 옛길은 혼자 걷는 산책길로도 그만이지만 적절한 속도에 맞게 생각을 끌어오기도 좋아서 힐링 장소로 손색이 없는 숲길이다. 만연산과 안양산, 무등산으로 이어진 산맥을 따라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옛날부터 널찍한 고갯길이었다. 광주와 화순을 잇는 연결통로로 1757년 요지 도서 도로 편에 판치(板峙)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깊고 험한 산길이다 보니 도둑들이나 산적들이 나타나 공포감에 떨었고, 특히 동학혁명 당시 수많은 농민들이 학살당한 탓에 원혼이 떠돈다는 선입견으로 무서움을 더했다. 이렇듯 너릿재는 역사적 수난사가 어려 있다. 1946년 농민들 2,600여 명이 한밤중에 고갯길을 넘으며 ‘완전 독립을 보장하라’고 외치자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는가 하면, 1950년 6·25 직후 9·28 수복 당시 경찰과 청년들이 인민군에게 희생되었으며, 1980년 5·18 때에도 너릿재를 지나가던 버스 승객 30여 명이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한 현장이다.

이런 아픔의 역사가 깊게 묻혀있는 곳이지만 세월 그래프는 너릿재를 가꾼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돋보이기 시작했고, 이곳의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계절로 봄을 꼽는다. 벌써부터 일어서는 새싹 눈(目)과 초록 씨앗의 응원을 받으며 머지않아 장관을 이룰 벚나무 600여 그루가 너릿재 숲길을 장식할 화려한 모습이 기대된다. 벙글어진 웃음으로 두 손을 받쳐 들고 감탄사를 외치며 환상에 젖어 흥겨워하는 사람들의 미소꽃이 선하게 흐른다.

너릿재 옛길이 아픔을 승화시켜 힐링 코스로 이름 자리를 굳건하게 확보하기까지는 우리 군민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과 손길이 필요하다. 읍내와 다소 거리를 두고 있고,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도보로 쉽게 다가설 여건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도시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위치여서 도로 가까이 조성된 숲 정원과 멋진 미술관과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쉬어가는 여유로움을 갖게 하는데 더없이 좋은 역할을 한다.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의 열악한 교통여건이었지만 1971년 터널이 뚫리고 도로가 정비된 후 외곽 도로까지 마련된 요즈음은 주변 풍광을 돌아보며 철 따라 바뀐 자연의 언어를 귀담아들을 수 있다. 잠시 일터와 삶터에서 벗어나 생각 숲에 안길 수 있으며, 들숨날숨과 함께 하늘과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진 자연과의 마주함도 감성의 문을 열어주어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햇볕이 차려놓은 봄 터전에서 행복 선물을 받고자 찾아든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이때에 600여 그루의 화려한 벚꽃 무대가 펼쳐질 너릿재 옛길의 봄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래오래 걷고 싶은 『전남 대표 숲길』로 보존되도록 보다 많은 군민들의 성숙된 참여의식과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야 하는 공통과제가 있지만 어렵지 않은 진행형으로 이어질 거라 여긴다. 이곳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여기는 좋은 사람들만 사는 곳 같아요. 쓰레기가 없네요. 나무, 풀, 꽃들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았어요.” 이런 말을 듣는다면 우리 군민의 문화 척도는 최고 수준의 평가로 인정받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드높고 맑은 우주로 이어진 초록 지구 한자락 화순 너릿재 옛길이 365초롱 바늘이 있는 한 천년만년 대대로 사랑받는 우리의 미소꽃 화려한 봄으로 남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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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ah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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