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좋다. 하지만 아쉽다. 지역 예술인을 위한 사업이 엉뚱한 이들에게 돌아갈 형편이다. 행정적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 얘기다.
화순군(군수 구충곤) 관계자는 지난 28일, ‘공공미술 프로젝트-우리 동네 미술’의 모집 결과를 심의 중이라고 밝혔다. 최초 공고 이후, 지원 팀 현황을 고려하여 3차 공고까지 진행한 결과다.
‘우리 동네 미술’은 공공 미술 컨텐츠 확충 프로젝트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인에게는 일자리를, 국민에게는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화순읍 금호아파트 및 부여 6차 옹벽에 663m의 벽화거리를 조성한다. 소요예산은 4억, 단일 사업으로는 적지 않다.
▶ 우리 동네 미술? 남의 동네 사람이 그릴 판
문제는 지역의 현실적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업, 이름부터 우리 동네가 들어간다. 취지 또한 ‘지역 예술인에게 일자리 제공’이다. 그런데 정작 지역민들은 참여하기 힘든 구조다. 지원 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대표자와 작가를 포함한 총 37명 미만’은 ‘지원불가’다.
총 37명. 최초 공고 후 모집 마감까지는 약 한 달. 인구수 6만 5천 화순군에선 한 달 만에 37명의 지역예술가를 확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지역미술인 총 수가 37명보다 적을 가능성도 있다. 즉, 타지역 예술인들 중심으로 구성된 팀에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팀 성립 자체도 여의치 않다. ‘화순의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젝트지만 애먼 지역의 예술가들이 자리를 차지할 상황이다.
물론 '지역미술인 중심으로 구성 원칙'이라고 명시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허술하다. 해당 지역 예술인 참여가 부족한 경우 타 지역 예술인 참여가 가능하다는 규정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고할만한 타 지역의 선례가 있어 실망은 배가 된다. 화성시 또한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화성시에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둔 미술인’으로 한정했다. 제도적인 배려가 가능하지 않았냐는 지적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평가항목 자체가 허술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업수행능력(15점)을 보자. e-나라도움, 회계처리 등 행정 처리 능력을 요구한다. 미술과 다소 거리가 먼 조건이다.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행정인력은 작품 제작에 참여하지 않고 회계 정산 유경험자 등을 채용하는 방안을 권장한다’고 명시했다.
짧은 사업기간도 문제다. 공고에 명시된 것은 20년 9월부터 21년 2월. 정산기간 포함하여 약 5개월이다. 시가지 속 전시되는 작품의 제작 기간으로는 지나치게 속전속결이다. 자칫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전시돼 흉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경과 공공성 등을 고려하면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은 힘들다는 주장이다.
이에 화순군 측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면서도 최대한 지역민을 배려했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시 단위의 지자체는 많은 인구수와 예술인들로 인해 자체적으로만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화순군 규모의 지자체는 지역 예술가로는 충족이 아예 힘들어 우리로서도 아쉬운 부분이다”고 밝혔다. 이어 “심의 중인 관계로 지원 팀의 타 지역 작가 비율은 공개하기 힘들지만 일단 팀 대표는 화순 작가”라고 덧붙였다.
또한 인원제한에 대해서는 "모집 인원 37명은 주최 측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가이드라인으로 내려온 것"이라며 "전남도에서도 일자리 창출 목적이기 때문에 변경 불가로 못 박은 부분이다"고 해명했다.
화순군은 최초 공고 이후 지역 예술계의 의견을 반영했다. 지역 작가 비율에 따른 배점을 5점에서 20점까지 상향했다. 사업수행능력은 30점에서 15점으로 하향했다. 지역민을 배려했다는 주장이 아주 빈말은 아닌 셈이다.
한편 지역 미술계 현장에선 ‘허탈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단순 경제적 이유가 아니다. 고향을 위해 예술 역량을 펼칠 기회를 놓쳐서다. 예술을 통해 고향에 기여할 기회는 많지 않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유우현 기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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