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농원의 노상현 대표. 전남도 선정 제24호 유기농 명인이다. 명인이 무엇인가. 전남도 설명은 이렇다. ‘농업 현장에서 오랜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유기농법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농업인’이다. 대단한 찬사지만 어쩐지 부족하다. 노 대표에 대한 수식어로는 심심하다는 얘기다.
노 대표는 복숭아 농부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공부하는 농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다. 한 번만 더. 아주 정확히 말하면 그는 움직이는 존재다. 그가 말했다. “배우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배움. 공부. 노 대표에겐 삶의 근원적 행위인 셈이다.
그 때문일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한 이래 배우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유독 어려웠던 유기농.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공부를 향한 큰 동기부여가 됐다. 그런 면에서 유기농은 그에게 필연이다.
지겹던 장마가 그치고 구름 한점 없던 날. 능주면 복숭아 농장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직전까지도 농장 업무로 분주하던 그는 “잠깐이라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농장일”이라며 웃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처음부터 농사일을 한 것은 아니시잖나. 계기가 따로 있으신지.
“특별한 계기는 없다. IMF 이후였던가. 당시 회사 업무는 시간이 많이 남아 아버지 과수원 일을 돕게 됐다. 그러던 2000년대 초반.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아버지를 대신해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전업은 아니었다. 직장과 과수 농사를 병행하며 한동안 투잡이었다. 그러나 점점 벅찼다. 과수원 규모가 커져만 갔다. 결국 2012년도에 완전 귀촌을 했다. 정확히 2월 15일. 회사를 정리하고 나는 전업 농부가 됐다.”
공부하는 농부로도 유명한데.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아버지와는 뚝딱 했던 것도 혼자 하려니 힘에 부쳤다.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2년도 즈음, 때마침 친환경 바람이 불었고 농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계기로 친환경 공부를 시작했다. 냄새에 예민한 나는 농약을 안 친다는 것이 아주 좋았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많이 물어봤고, 많이 배웠다. 여기저기 다녔다. 평생교육원과 벤처농업대에서 배웠다.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간 농업인 대학 강의도 들었다. 복숭아 과정만 네 번. 유기농 과정 두 번에 강소농까지. 재작년엔 농업마이스터에 합격하고 작년엔 유기농 대학을 다녔다. 매년 새로운 강의를 듣고 하나의 타이틀을 공부한다. 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농사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듣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강의도 한다. 마이스터대학 혹은 샘터, 기술원 등 여러 곳에서 했다. 강의를 하면서도 나는 배운다. 학생들이 질문하면 내가 답변하고 서로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 이런 점이 내겐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고, 남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알려준다. 배워야 한다. 알고 못하는 것과 몰라서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심지어, 알고 지어도 안 되는 것이 농사다. 농사가 그렇다. 그해 농사는 작년과 다르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년 다르다. 사람도, 환경도, 작물도. 너무 많은 것이 변한다. 옛날 농사와 현재의 농사. 그저 땅에 뭔가 심는 것만 같다. 배워야만 대처할 수 있다.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하나씩 풀어갈 뿐이다.
결국, 뭘 몰라서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행운이었다. 배우는 것이 내겐 강력한 동기였다. 매 순간 농사에 대한 로드맵을 그렸다. 배우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꿨다.”
힘든 길을 택하셨다. 왜 유기농이었나.
“첫째, 화학적인 농약을 안 한다는 것. 그것이 좋았다. 나는 냄새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이다. 농약 냄새를 안 맡는다는 기대감이 컸다. 농약을 치지 않고서 벌레도 잡고 농사도 지을 수 있다니. 엄청난 매력이 느껴졌다. 물론 어려움 또한 엄청났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니 성과가 있었다. 2006년 저농약 인증을 받았고 2015년 전남 최초로 유기농 복숭아 인증을 획득했다.
둘째, 거창한 수준은 아니지만 환경보존을 위해서다. 환경 오염이 지속되니 이상기후도 나타난다. 물론 당장 나로 인해 큰 환경변화는 없다. 그러나 일단 나 한사람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과정이 중요한 게 바로 유기농이다. 농약을 줄여 환경을 보존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천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는지
“농사는 내가 좋아서 해야 한다. 뭐든 그렇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오래가지 못한다. 힘들 때가 유독 많은 게 농사다. 유기농인 나는 더 심했지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어서 계속 갈 수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 열정과 애정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길게 못 간다. 조금만 어려워도 포기한다. 기왕에 농업에 들어왔으면 하는 데 까지는 해봐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애정이다.”
앞으로의 계획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농사 그 자체보다는 다른 농업인을 돕고 싶다. 농업인 마이스터라는 지위가 다른 게 아니다. 전문 경영인으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컨설팅도 해준다. 강의도 하고 교육도 하는 일종의 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많이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찾아주시는 분들께
“우리 복숭아가 가격이 조금 비쌀 수도 있다. 색깔이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유기농이라고 안심하시고 찾아주시는 것이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 고객분들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맛있는 과일을 대접하는 것이다. 나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늘 공부하고 늘 움직이겠다. 그게 곧 유기농 아니겠나.”
유우현 기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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