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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조광조, 그는 누구인가? (2)
작성 : 2020년 09월 08일(화) 16:26 가+가-
어디까지가 그의 모습인가. 완벽한 유학자에서 과격한 개혁가. 혹은 개혁의 의미마저 의심받고 있는 실패한 정치가. 무엇이 사실일까. 아무래도 그의 말과 생각을 직접 읽고 느끼면서 그 삶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조광조의 생은 그야말로 극적인 서사 그대로다. 열일곱 나이로 유배지의 스승을 찾아 떠난 길에서부터, 결국 마지막 자신의 유배지에 이르기까지. 한 장면 한 장면, 기록 속에서 걸어 나온 조광조는, 선입견과 단편적인 지식을 털어내고 만난 조광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인물이었다.

그의 배경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걸친 연산군과 중종 시대를 떠올려보라. 두 번의 사화와 한 번의 반정反正이 지나간 16세기 초반의 조선. 나라의 기강은 흔들리고 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누군가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하물며 옳고 그름의 기분과 인간의 도리를 돌아보았겠는가. 조광조는 그런 시대를 바로잡을 새로운 세대의 리더로 나섰던 것이다.

개혁이 멈추어 선 까닭은, 그 이후 이어진 정치적 혼란을 조광조에게 다그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죽음에 이른 까닭이 무엇이었던가. 그의 무지나 무능이 아닌, 기득권의 저항이 가져온 결과였으니. 그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것도 백성의 삶에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정신적 가치를 강조했다고 해서 민생의 본질을 도외시한 책상물림으로 비난받을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요순시대를 만들고자 했으되 그저 복고를 꿈꾼 태평한 지식인은 아니었다. 옛 시대에 대한 선망과 새 시대를 향한 열망을 하나의 꿈으로 엮어내었으니. 치국治國의 근본을 물으며, 학문의 이상으로 현실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개혁의 의지로 충만한 정치가였던 것이다. 사실 조광조의 도전은 건국 한 세기를 넘어서는 조선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고민이었다. 더 나은 시절을 기다렸다면 더 완벽한 개혁의 성취로 이어졌을까. 오히려 그때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런 개혁적인 지도자를 제대로 만날 기회마저 잃었을지도 모른다. 조광조는 잠자는 시대를 흔들고자 일어선 바람 같은 존재였다.
화순군민신문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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