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죠~!” 라는 막말을 했던 부장판사가 2013년 1월 대법원에서 견책처분을 받았다. 사기사건의 피해자 여성(66세)에게 진술을 똑바로 못한다면서 한말이었다. 또 다른 민사재판에서도 피고인에게 “여자분이 왜 그렇게 말이 많아요?” 라고해서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가 결국 스스로 법복을 벗었던 사건도 있었다. 이렇듯 함부로 말을 하는 법관들에게 억울하게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많았을까?

누구든 세월의 시간표를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지만 < 늙으면 죽어야돼 >는 재판관 자신에게 한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누구나 늙기 마련인데.... 자극적인 말로 상대를 무시했다면 한번쯤은 자신을 되돌아봐야할 것이다. 자식들마저 재산 없고 아프고 힘없으면 귀찮아서 양로원에 부모를 보내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아온 나로서는 나이가 들면서 얻어지는 관절염, 심장병, 허리질환 외에도 건망증이 잦아지면 죽어야 하는가? 를 되뇌어 보게 한다.

TV앞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던 노부부에게 어린손자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흰머리가 많아요?” 하고 묻자 아무런 생각 없이 “늙어서 그렇지~” 하니까 손자가 하는 말이 “그래요? 그럼 늙었으니 죽어야죠!” 했다고 한다. 또 할머니를 보고는 “할머니는 흰머리가 없네요?(염색머리) 할머니는 흰머리가 없으니까 안죽어야죠~” 어린나이에 눈에 보이는 대로 한말이지만 영감님의 속은 아무래도 좋았을 리가 없다.

화순과 같은 농촌에는 일할 젊은이도 적고 어른들만 살다보니 농사짓기 팍팍하고, 집주위에 잡초가 나도 농약 통을 못 짊어질 정도니까 힘들게 하루하루를 등 짊어지듯 살고 있는 노인들도 많다. ‘조금 농산물 값이 오를만하면 수입해 불고, 똥값이 되어도 보상도 안 해주고, 중간에서 나쁜 놈들은 농간만 부리고, 콜레란지 코로난지까지 지랄을 하면 잠도 못자고~ 잉! 늙은 몸 언제 개구신이 물어갈지 모릉께~~’ 하는 푸념 섞인 말까지 나올법하다.

어떨 때는 농사 때문에 밤새 한숨만 쉬다 밤을 하얗게 새곤 했을 수도 있고 쓸데없이 하늘만 쳐다보면 오장이 뒤집어지기도 했을 수가 있다. 이럴 때면 확- 비라도 한바탕 퍼부어 버렸으면 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2009년도에 개봉했던 이충렬감독의 < 워낭소리 >에서 느껴지는 건 다쳐서 위로 치솟은 소 발굽과 구부러진 소뿔, 그리고 초점 없이 충혈된 소의 눈과 느릿느릿한 소걸음이 영화 속에서 자주 나온다. 소 주인인 최노인도 오그라진 손가락이며 침(針)을 잘못 맞아서 절름발이가 된 다리가 워낭소를 닮았고 느린 소걸음도 쇠약해진 몸과 지병으로 고생하는 최노인과 서로 동화되어서 나타난다. 여기에 할머니의 푸념 “이놈의 팔자. 언제 고생 안할라나~ 라디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 하는 넋두리에서 < 늙으면 다 죽어야제 >하는 소리를 듣는듯했다.

< 늙으면 다 죽어야돼 >하는 소리는 정답도 없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노인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이 들면 주둥아리 처닫고 그저 사람들한테 지갑이나 팍팍 열라는 게 정답일까? 시간도 못 지킨다. 금방 까먹는다. 돈 셀 줄도 모른다. 걸핏하면 넘어지고 다치고 공과금도 못 낸다. 하는 소리 또 하고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다는 등등.... 돈만 퍼가는 젊은 놈들이 돈만 알고하는 소리도 아닐 테고...
버스 경로석에 앉아서 노인이 서있어도 핸드폰만 하고 있는 녀석은 도대체 어느 집 새끼일까? 창밖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방구석에 놓여있던 늙은 호박 생각이 떠올랐다. 어린호박은 부드럽고 요리하기도 쉽지만 늙은 호박은 바닥에 놓고 찍어 누르며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야만 쪼개진다. 쪼개고 나면 손바닥은 불이 날 지경이고...

원래 호박피부는 껍질인데 늙으면 껍데기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늙은 호박의 껍데기는 엄지손가락보다도 두껍다. 이렇듯 늙은이의 마음도 소통이 안되고 단단해지면 먹통이 돼서 늙은 호박껍데기 같이 되면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다. 속 알맹이만 필요하듯이 돈만 빼가고.... < 나도 늙으면 죽어야제~ > 한숨이 절로 나올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