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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다리 떴다 삥아리 가돠라
작성 : 2020년 06월 15일(월) 08:48 가+가-

성길모 전 화순교육장

1960년대 초 우리 국민들은 참 지독하게 가난했고 농촌은 그 가난이 더욱 극심했다. 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손바닥만 한 땅을 가지고 있는 집이나 소작농들은 물 한 바가지로 배 채우던 보릿고개가 닥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먹을 것이 없어 얼굴이 퉁퉁 붓기 일쑤였다. 죽지 않기 위해 연 50%에 달하는 고리채와 곡식을 얻어다 쑥과 시래기를 넣고 겨우 죽을 쑤어먹고 살았고 아이들은 산과 들을 헤매며 어린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송키를 긁어 먹었으며, 산비탈에서 띠의 새순인 삐비(삘기)를 뽑고, 찔구(찔레 순) 또는 띠 뿌리를 캐 씹었으며 칡을 캐 먹고 허기를 달랬다.
그래도 못 견디는 집에서는 어린 딸을 남의 집 애기담살이로, 아들은 꼴머슴으로 보내기 일쑤였다.

어느 초가을 날 ‘서당까끔’ 아래 고구마밭에서 풀을 뽑으시는 어머니께 드리려고 달디 단 사카린 물을 담은 주전자를 들고 갔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아가! 방다리 떴다 언능 가서 삥아리 가돠라!”하고 큰 소리를 치셨다. 하늘을 보니 상당히 큰 새가 한 마리 빙빙 선회하며 마을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도 ‘각시바우’ 절벽 틈에 사는 매나 솔개 같았다. 나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 내려와 부지런히 마당을 헤집고 있던 암탉과 삥아리를 엇가리 속으로 유인해 가두어놓고 방다리가 포기하고 돌아간 후에야 다시 엇가리 밖으로 내 놓았다. 그 즈음에는 가족이 모두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아무도 없을 때 방다리가 어린 닭이나 병아리를 채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때는 가난한 중에도 집집마다 몇 마리의 닭을 길렀고, 어떻게든 돼지 한 마리씩은 기르려고 애를 썼다. 닭이 둥우리에 알을 낳아놓고 ‘꼬꼬댁꼬꼬 꼬꼬댁꼬꼬’하고 신고를 하면 그 알을 꺼내다가 아이들 학교에서 소풍 갈 때나 제사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남은 달걀은 열 개를 짚으로 길게 포장해 장에 내다 팔아 고등어라도 몇 마리 사다가 가족들 입을 즐겁게 해줄 수 있었다. 요즘이야 대형 양계장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계란이라서 푸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더구나 부화를 시켜야 하는 달걀이라 집집에 수탉 한 마리씩을 길러서 알은 모두 유정란이었다. 그래서 여름이면 어린아이까지 들에 나가 보리이삭을 주어다가 사람이 먹고, 일부를 남겨 닭에게 먹였다.

닭은 전통傳統 혼례식婚禮式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례청醮禮廳에 마련된 상 위 양편에는 수탉과 암탉이 날개를 묶인 채 마주보고 앉아 혼례 부부가 금슬 좋게 잘 살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 뿐인가. 적당히 자란 약병아리 백숙은 원기가 떨어져 다 죽어가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기운을 차리게 했고, 약이 귀한 때라 닭 속에 옻나무 껍질을 가득 넣어 달인 옻칠계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닭을 밤에 쌀가지(삵, 살쾡이)가 한 마리라도 물어 가버리거나 못된 동네 청년들이 서리라도 해 가버리면 온 식구들의 마음은 애통하고 절통했다. 지금은 양계장에서 버려진 수평아리들을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사다 가지고 놀다가 죽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이 버리지만 그땐 병아리 한 마리도 귀하디귀한 시대였다. 또 돼지는 살림 밑천이었다. 구정물이나마 잘 먹여 길러 새끼를 한 배 낳으면 가정 경제에 큰 보탬이 되었다. 이러한 때에 행여 방다리가 그 귀엽고 아까운 병아리를 한 마리라도 채가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래서 닭을 기르는 집집마다 대나무를 밥그릇 모양으로 엮어서 엎어 닭을 보호하는 엇가리가 하나씩 있었다. 노오란 털이 보송보송하고 예쁜 병아리를 줄줄이 거느리고 다니며 모이 찾아먹는 법을 가르치는 암탉은 자식 교육을 철저히 했다. 절대로 엄마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 것,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고 엄마가 하는 모양을 잘 보고 따라 할 것 등. 그러면서 하는 짓은 도대체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발로 땅을 파헤쳐 지렁이라도 나오면 차례로 병아리가 먹게 하는데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를 훔쳐 먹을 때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발로 긁고 헤집고 하여 그 아까운 보리를 멍석 밖으로 몽땅 흩뿌려 놓는다. 그럴 때 보리 주인은 ‘저 닭의 발’이라 하지 않고 ‘저놈의 달구새끼 발목뎅이’라며 화를 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암탉은 개나 고양이가 병아리 주변을 서성거리면 목숨을 걸고 쪼아대며 자식들을 지킨다. 하늘에 방다리 같은 날짐승이 보이면 얼른 병아리들을 불러 자기 날개 속에 모두 감추고 보호를 하거나 주인이 현명하게 아래를 돌로 받쳐 틈을 내 놓은 엇가리 속으로 병아리들을 데리고 들어가 숨었다. 자식 사랑과 보호본능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나보다.

금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모두들 외출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일이 많았는데, 만일 어린 녀석이 부모 몰래 나가다 들키면 이렇게 말하려나? ‘큰 애야 코로나 떴는디 언능 동생 가돠라.’ 오늘은 삐약삐약거리며 어미닭 주변을 서성이다가 어미가 먹이를 하나 발견하고 ‘꼬고고고’하며 먹으라면 재빠른 녀석이 순식간에 쪼아 먹고 또 달라고 쳐다보는 노랗고 예쁜 병아리가 생각이 나고 보고 싶다.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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