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럽게 다가선 초록빛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이다. 계절이 안겨준 선물을 마냥 감탄하며 좋아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5월은 설렘이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안타까움이 크다.
오월이 되면 5·18이라는 가슴 시린 기억이 고개를 든다. 무거운 숨결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으며, 영원히 사라질 수도, 사라져서도 안 될 비극과 아픔과 민주 승리라는 역사가 영상의 화면처럼 생생하게 반추된다.
우리 화순은 올해 들어 40년이 된 5·18에 대한 기억이 남다른 곳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품어 안은 지역이다. 정의와 민주수호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군민들의 충정과 의협심은 결코 단순하거나 가볍지 않다. 길고도 깊은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호남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던 삼천리 출신 최경회 의병장이 있다. 충의공 최경회 의병장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 「충의사」가 동면에 세워져 있어 호국정신을 계승하는 역할을 한다.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에 항거하여 능주, 화순, 동복에서 활동한 이양 출신 양회일 의병장도 피 끓는 애국심을 보여주신 분이다. 의병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무기를 만들었던 이양면 증리의 호남의병전적지 「쌍산의소」는 국가지정 문화제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1987년 6·10대회 출정을 위해 시위대에 참가하였다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 학생 이한열 열사도 능주 남정리 출신이다. 잘못된 정국을 바로 세우고자 자발적 참여로 동참대열에 합류하였다가 불행을 당한 청년이다.
이렇듯 불의에 항거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애국과 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 앞장선 우리 고장 선열들은 후손들의 거울이다. 정의감에 불탄 우리 군민들은 5·18 민주화 운동에 스스로 참여하여 여러 곳에 족적을 남겼다.
화순역에는 5·18 민중항쟁 사적비가 세워져 있어서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화순역 광장은 군민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곳으로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 이후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어 총기와 실탄을 들었다고 적혀 있다.
계엄군과 시민, 학생들이 쫓고 쫓기면서 생사를 오갔던 너릿재는 군민들이 도청 사수를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광주로 넘어가기 전 집결했던 장소이다. 계엄군의 폭압과 학살에 맞서 10일 동안 항쟁 시위를 벌인 화순경찰서 사거리와 화순군내버스터미널도 5·18 역사의 현장이다. 무자비한 계엄군에 항거하며 앵남 쪽으로, 만연산 쪽으로 동면 쪽으로 질주하던 시민과 대학생들의 외침이 쟁쟁하게 들리는듯하다. 그 당시 나는 화순초에 근무하면서 절박했던 현장을 똑똑하게 보아온 터라 시위대의 모습이나 차량에서 흘러나온 호소는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만연산 입구에도 5·18 민중항쟁 사적비가 세워져 있어 통렬한 아픔을 말해준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나라를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독재와 탄압으로 옥죄이자 더 이상 참지 못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5·18 광주항쟁이라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했다. 계엄철폐, 민주회복을 외치며 총칼 앞에 맞선 초유의 사태로 무장한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할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모든 언론이 통재된 상황에서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대부분의 타 지역 사람들은 5·18의 엄청난 현장을 아무도 믿으려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내려온 빨갱이들이 나라를 전복시키려고 무모하게 저지른 반역이라는 거짓보도에 속았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믿으려는 무리들이 있으며, 한 점 반성 없이 법정에서까지 허위 주장을 한 전두환의 뻔뻔스러움은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다.
다행히 푸른 눈의 목격자인 독일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놀라운 기지로 광주시민봉기가 처음으로 세계 각국에 알려진 것은 가슴 떨린 고마움이다. 목숨을 건 힌츠페터 기자는 현장 목격 촬영 필름을 금속 캔 속에 포장해 과자더미 안에 숨겨 일본을 거쳐 독일 함브르크 뉴스센터에 전달함으로써 독일에서 방영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로 인해 엄청난 살생과 인권말살 장면이 전 세계에 전파를 탄 것이다. 그의 영웅적 행동은 진실을 밝히는 기적을 만들었고 5·18을 겪는 광주시민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후 ‘꽃잎’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등 5·18 관련 영화가 만들어져 대중들과 만남으로써 진실이 밝혀지고 연령이나 세대 구분 없이 왜곡된 인식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특히 ‘꽃잎’은 앵남을 배경으로 전개된 부분이 있어 인상적이다. 저녁 무렵 나주에서 돌아오던 퇴근길에 우연히 촬영 장면을 한참동안 지켜볼 수 있어서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화순하면 흔히들 온화하고 순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곳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강건하고 정의로운 심성이 뿌리 깊게 잠재된 지역민의 특성으로 인해 잘못된 상황에 직면하면 묵과하지 못한 기질을 지니고 있다. 선조들의 투철한 애국 혼과 군민들의 뜨거운 가슴이 있어 5·18을 품어 안은 화순의 5월은 그래서 더욱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