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은 1954년에 발표된 윌리엄 골딩의 첫 장편소설로,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당시 ‘무인도에 고립된 순수한 아이들의 행동 양식의 변화를 통해 인간내면에 잠재해 있는 사악함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상징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핵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소년들을 안전한 장소로 후송하던 비행기가 적군의 요격으로 격추되고 25명의 소년들은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만 다섯 살에서 열두 살에 이르는 소년들은 처음에는 무인도를 탐험하면서 잘 지낸다.

하지만 언제 구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될 때까지, 규율과 통제를 통해 버티어 내려고 했던 랄프의 무리와 무인도에서의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해 고기를 얻어야 한다는 잭의 무리가 맞서게 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급기야 어른들 못지않은 욕망을 드러내고 그 욕망의 충족을 위해 잔혹한 술수까지 동원한다.

특히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려는 잭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섬에 괴물이 있다고 퍼뜨리고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여 랄프의 무리를 하나 둘씩 자신들의 무리로 끌어들이게 된다.

괴물이라고 알려졌던 존재가, 무리에서 도망쳐 동굴에 숨어 있던 비행기 조종사였음을 알게 된 사이먼이, 이 사실을 알리러 잭의 무리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야광봉을 휘두르며 달려가는데, 이들은 달려오는 존재의 정체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사이먼을 괴물로 몰아 집단적으로 살해한다. 광기로 전염된 이성을 잃은 아이들의 이런 잔인한 모습이, 기독교를 절대화한 후 권력과 기득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았던 15세기의 역사적 사건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윌리엄 골딩은,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의 이성과 합리, 법과 질서보다 야만성과 집단 광기가 더 지배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재탐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소설화함으로써 전후(戰後), 인간에 대해 깊이 회의(懷疑)에 빠져 있던 당시 수많은 지성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의 제목 ‘파리대왕’의 의미를 해설하는 내용을 보면 ‘곤충의 왕’, ‘악마’, ‘무질서하고 도덕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사납게 휘몰아치는 이드(id)’로 설명하고 있다. 윌리엄 골딩이 왜 자신의 첫 소설에 이 제목을 붙였는지 추측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 밝고 긍정적인 기대를 갖기보다는 뭔가 모를 두려움과 우려를 가지고 부정적인 예측들은 내놓기도 한다. 윌리엄 골딩 역시 『파리대왕』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축적한 문명이라는 것, 이성과 합리라는 것, 법과 질서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