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한(漢)나라 3년 한 유방은 경현과 삭성 사이에서 항우와 대치하고 있었는데 여러 번 사신을 보내 승상을 소하를 위로했다. 겉으로 보면 소하가 후방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위로했다고 하지만 속으로 소하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때 소하는 의심하는 유방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자손들과 형제들 중 싸울 수 있는 자들을 모두 뽑아서 유방이 있는 군영으로 보낸다. 유방은 소하의 이런 모습에 의심을 풀고 매우 기뻐했다.

한나라 11년 진희가 모반을 일으켜 유방이 반란을 진압할 때 한신까지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 소하는 계책을 써 한신을 주살하게 된다. 유방은 소하를 상국으로 제수하였고 식읍 오천 호를 더해 주었으며 군사 오백 명과 도위 한 명을 보내 상국의 호위병으로 삼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소하의 공을 높이 사 대접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의심 많은 유방이 사람들을 보내 소하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이때도 소하는 봉읍을 사양하여 받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서 군비에 보탰다. 소하의 이런 모습에 이번에도 유방은 의심을 풀고 크게 기뻐했다.

한나라 12년 경포가 모반하자 유방은 스스로 장수가 되어 경포를 공격하고 있으면서도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상국 소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전장에 나가 있을 때마다 자기 뒤를 맡을 사람은 소하밖에 없었는데도 유방은 소하를 신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이에 소하는 민심이 유방을 따르도록 백성들에게 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일부러 사람들에게 악평을 듣고 민심을 잃는 행위를 한다.

유방은 사람을 끌게 하는 협객 마인드 말고는 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건달로 들개처럼 살아온 사람이라 언제든 권력자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하는 유방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지 파악하여 유방의 마음을 잘 맞추고 만질 줄 알았다. “왕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역린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한비자의 말을 소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지켜낸 충직한 신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하를 한 나라의 재상으로 높이 사는 이유는, 한(漢)의 국가적 체계를 법적, 행정적으로 안정되게 마련하기 위해 그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 하에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