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파트릭 쥐스킨트의 『향수』는 한 편의 잔혹 스릴러thriller물 같다. 그런데 1985년 이 책이 발간되자마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39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00년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1,200만 부가 팔리면서 쥐스킨트에게 작가로서의 큰 명성을 가져다줬다.

『향수』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1738년 한여름, 파리의 악취가 진동하는 생선 좌판대 밑에서 사생아로 태어나자마자 생선쓰레기더미에 버려지는데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난다. 이후 고아원에 보내져 자라다가 무두장이에게 헐값에 팔려가 혹독환 환경에 처하지만 여기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이러한 그르누이에게 기이하고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이 세상의 온갖 냄새와 향기의 원천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그르누이는 어느 날 가죽을 배달하러 번잡한 시내로 나가게 된다. 거리를 걷던 그는 미묘한 향내에 이끌려 그 향내의 주인인 한 처녀를 뒤쫓아 갔는데 화들짝 놀라는 그녀를 부지불식간에 죽이고 만다. 이후 향수 제조업자 발디니를 찾아가 향수제조법을 완벽하게 익히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향수의 본고장 그라스로 떠나게 된다. 그 여정 중 어느 날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고 큰 상처를 입는다.

이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향기에 집착하던 그르누이는 지상 최고의 향수, 즉 사람들의 사랑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향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13명이나 되는 여성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하고 그들의 머리털과 피부에서 향을 추출,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진 그르누이는 체포된 후 공개 처형장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이 때 향수 한 방울을 자기 몸에 떨어뜨린다. 그러자 간수들은 그에게 부복하고 광장까지 에스코트 한다. 자기 딸을 희생당한 리쉬 검사조차 그 향을 맡자 그르누이를 의심한 자신을 회개하는 등 사형 집행의 최종 결정권자인 주교마저 그 향을 맡자 그르누이를 강림한 메시아로 칭송하기에 이른다. 성난 군중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나아간 그르누이는 손수건에 향수를 뿌려 공중으로 날렸다. 그러자 향내를 맡은 군중은 “천사다! 천사께서 내려오셨다!”라고 환호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욕정이 불일 듯 일어나 집단으로 성행위를 시작하게 된다.

군중의 숭배와 사랑을 한껏 기대했던 그르누이는 군중들에게 실망하고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와 자신과 같은 부랑자들이 사는 소굴에 들어가 최고의 향수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자기 머리에 쏟아 붓는다. 그 향기와 더불어 그르누이에게 뿜어져 나오는 광채를 보게 된 주변의 부랑자들은 “천사다! 천사!”라고 외치며 황홀한 표정으로 그에게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뼛조각 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사라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향수』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였고 공간적 배경이 파리였음을 생각해 본다.
계몽주의가 싹트던 그 시기 근대를 지향하면서도 근대성의 이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 지향적이고 퇴행적인 경향을 보였던 18세기 계몽주의의 한계를 이 작품은 그르누이와 여러 인물들의 통해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특히 그르누이는 최초의 살인 이후 “수백만 가지의 냄새조각을 검사해서 체계적인 질서에 따라 배열”하는 등 향수 제조를 위해 지극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생명조차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할 뿐 생명윤리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는 그르누이의 모습은 목적 달성을 위해 ‘도구적 합리성’을 저버린 당시 계몽주의자들에 대한 조롱과 비판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