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지나고 난 이후 애닯다 어이하리
일평생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훈민가訓民歌 중 "효孝"를 강조한 시조입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님 가신 지 30년, 그 아이의 나이 일흔이 넘으니 점점 더 부모님이 그립고 두 분께 효도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이 아파올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이 살아오신 모습의 절반만, 아니 반의반만 흉내 내고 살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애달파 하진 않을 텐데……

부모님은 문중의 종손이고 외아들인 그 아이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하셨습니다. 맛있는 것은 꼭꼭 챙겨 먹이고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와 예의범절 등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는 밥상머리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외출하실 때 외에는 어린 그를 항상 데리고 다녔습니다. 특히 당시 아주 컸던 사평장날이면 꼭 아버지를 따라가 구입하신 물건을 들고 다녔는데, 덕분에 그 예쁜 「나이롱양말」도 일찍 신어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에 나온 사람들 중 아주 많은 어른들이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선생님, 장에 오셨능게라우? 그간 별고 없으셨지라우?”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상당기간 ‘참말로 요상허네? 워째 우리 아버지보고 선생님이라 헌당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에게 여쭈어보니 열다섯에 장가를 든 아버지는 열일곱의 나이에 일제시대의 그 험한 상황 하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화순군 남면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10년 동안이나 야학을 하여 눈을 띄워주었으므로 남면 내 아이들 수 백 명이 다 제자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제자들 중 일곱 분은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92세 되신 이칠진 제자는 “우리 선생님은 그냥 한글만 갈치신 어른이 아니여. 한글책허고 일본책 두 보따리를 갖고 댕기게 했는디 일본놈들이 야학에 감독을 나오는 날이면 미리 알고 일본책을 펴놓고 가르친 척하시다가 감독이 가면 얼른 다시 우리글을 가르쳐주신 진짜 애국자셨당께.”하시며 몇 년 전 그의 아버지의 공덕비 건립에 앞장서 주셨습니다. 그 『진재 성치완 공덕비』는 현재 남면사무소 앞에 서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교사가 되기를 원하셨고 그는 그 뜻을 받들어 평생을 교원으로 살아왔습니다.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힘이 들 때는 일제의 압제 속에서, 호롱불 밑에서, 심한 위장병을 이겨내며 아내의 뒷받침과 격려를 바탕 삼아 헌신적으로 한글을 가르치셨던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 시절의 김채순 선생님과 몇 분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중 아버지는 교단에 선 그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신 평생 스승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아버지의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 화순야학 교사로 활동 중입니다. 밝은 전등불 밑에서 복사기로 교재를 만들고, 넉넉한 필기도구를 제공하며 나이 많은 할머니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는 호강스런 야학교사입니다.

그는 가끔씩 나이와 건강상의 이유로 가르치는 일이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원한 스승이신 아버지의 험난했던 야학 당시를 상상하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악조건 속에서 아버지의 야학 교육활동을 뒷받침 하셨듯이 그의 아내도 그가 야학에 가는 날에는 격려를 잘해 줍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에 고전부전姑傳婦傳인가 봅니다.

그는 이번 스승의 날에는 아내와 함께 부모님 산소에 가 다시 한 번 두 분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와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