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봄이 오고,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다.
논밭을 가는 기계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는 하지만 정작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일할 만한 사람이 점점 줄어서 제법 큰 마을이라 해도 50,60대 청년(?)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 농가가 몇 집 안 되는 것이 현재 농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거의 놓아버린, 7,80대가 대부분인 마을주민들은 그저 노인당에서 소일하거나, 아니면 한 달에 3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용돈벌이를 위해 노란 제복을 입고 집게를 든 모습으로 가끔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고작이다.

내가 사는 마을도 면내에서는 아직 제법 큰 마을에 속하는데 벼농사를 짓는 농가가 이제 열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농지는 트랙터나 콤바인 등 대형 농기계를 가진 몇몇 농부들에게 몰려서 이제 마을마다 2~300마지기의 농사를 짓는 대농들이 출현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마을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이른바 ‘논두렁권력’까지 생겨나고 있어 농촌내부의 지배질서도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농사규모가 커지면서 ‘친환경관리’는 사실상 거의 어려워지고 있다.
벼농사를 포기해버린 대부분의 노인들은 겨우 한두 마지기의 밭농사를 붙들고 있는데 그나마 제초제나 농약이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 무시로 약을 뿌려대는 바람에 안전한 먹거리는 이래저래 거의 ‘그림의 떡’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려운 농민들을 돕는다며 만들어졌던 여러 가지 명목의 직접지불금들도 주로 경작면적에 비례해서 지급되고 있어 농사가 많은 대농들은 직불금만해도 몇 천만 원씩 수령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농촌 내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화되고, 영세농들의 농지를 한 필지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대농들 사이의 경쟁도 은연중에 치열한 모습인가 하면, 골프채를 매고 다니는 농민들이 면 지역에도 꽤 있다.

2~30대 젊은 층이 사라진 면 지역의 중.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들마저 학생수가 20~30명 수준으로 거의 폐교 직전으로 가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먹거리와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이를 실제로 실천해보도록 하는 ‘노작교육’은 당연히 사라진 지가 오래다. 이렇게 마을과 지역의 재생산구조가 아예 단절되면서 얼마지 않아서 마을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이후, 한·미, 한·중자유무역협정(FTA)등 굴욕적이고 대안 없는 대외개방정착이 노골화되어 왔다. 그러는 가운데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시행해 온 역대정부의 ‘기업농·전업농 육성’이라는 이른바 ‘규모화’를 앞세운 농업정책의 결과가 중·소농의 급속한 해체와 지역사회 붕괴라는 참담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역소멸’이라는 말도 그리 어렵지 않게 들려오고, 2029년에 자연감소가 시작되리라는 예상을 깨고 10년이 빠른 올해부터 우리나라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슨 ‘스마트팜’인가 하는 것을 내세워 그것이 우리 농업문제를 해결해 나갈 대안인 양 본질을 또 다시 호도하고 있는 양상이다.
2022년까지 전국 4개 지역에 수천억 원씩을 들여 이름조차 생뚱맞은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조성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전체 농민들을 위하는 정책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로봇형 인지능력기술적용, 농업·무인 자동 작물생산 시스템 등 이런저런 기술을 시험, 연구하는 단지를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농민을 거의 없애고, 대기업과 자본의 농업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길을 닦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권이 촛불에 의해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을 때 농민들은 농업에 있어서 마지막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권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렇다할만한 정책의 변화는 보이지 않고,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공약은 역시나 공염불이었던 것인가 싶어 많이 실망스럽다.

정권은 바뀌었어도 중앙정부에는 여전히 ‘농업만 있고 농촌은 없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도시는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농촌은 텅텅 비어간다. 전체 인구의 92% 이상이 전체 국토면적의 16~17% 정도인 도시지역에, 주거지역 개념으로 보면 전체 국토면적의 3%도 안 되는 면적에 몰려 산다니 이것은 비정상을 넘어 기형적이다.

폐 일언하고,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독일 같은 선진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과소화’를 넘어 지속가능한 마을과 지역과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는 우선 중·소농을 중시하는 농업정책으로 그 틀부터 과감하게 바꾸어야 한다.

더구나 전체면적의 73%가 산지인 우리 화순군은 농업경영규모를 늘려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지역이 절대 아니다. 이러한 지역의 조건과 특성을 감안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지자체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가족농을 중심으로 한 중·소농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농업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우리 군이 선도적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들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영농조합법인 등 다양한 형태로 협력하고, 여러 자원들을 공유해 나가도록 함으로써 마을과 지역을 다시 살리고, 특색 있고, 경쟁력 있는 농업을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의지의 문제이지 결코 허황된 꿈은 아니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