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은 헤세의 나이 40세에 쓴 작품이다. 이때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헤세는 처음엔 이 전쟁을 새로운 질서를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으나 ‘독일 전쟁포로 후원회’에서 활동하는 과정 중 전쟁의 비극을 직시, 반전 호소문을 전쟁포로를 위한 신문에 발표한다. 이 때문에 독일 언론의 거센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되고 민족의 반역자로 낙인찍힌다. 설상가상 전쟁포로 구호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애증이 교차했던 부친의 급작스런 사망, 막내아들의 정신질환, 아내의 신경쇠약 악화 등 개인적 위기까지 겹쳐 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된다.

헤세는 전쟁포로 구호사업을 중단하고 요양을 했지만 효과가 없자 칼 구스타프 융의 제자 J. B. 랑 박사로부터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다. 심리치료를 받으며 헤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왔던 갈등과 새롭게 직면하게 되고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헤세는 분석심리학을 연구하게 된다.

『데미안』은 헤세가 분석심리학과의 긴밀한 접촉 결과 얻어진 최초의 문학적 성과물이었다. 당시 헤세에게 글을 쓴다는 의미는 단순한 창작행위가 아니었다. 개인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학적인 인식의 반영이자 자기 치료의 기록이고, 헤세 문학의 새로운 방향전환을 알리는 일이었다.

분석심리학의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가 ‘자기실현’이다. 인간이 정신 작용을 통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곧 ‘의식’인데 ‘나 Ich’ 혹은 ‘자아 Ego’는 의식의 중심에 있는 존재이다. 즉 ‘나’가 알고 있는 세계가 의식의 세계인 것이다. 그에 반해 내가 모르는 정신세계, 즉 자아에 속하지 않는 모든 심리적인 경향과 내용들을 ‘무의식’이라 부른다.

무의식은 생명의 원천이며 창조적 기능을 지니고 있고, 그 속에는 무한한 에너지와 함께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자아의 의식이 이러한 무의식 속의 원동력을 받아들여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는 행위가 곧 ‘자기실현’이다.

자기실현의 과정은 곧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이고,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자기실현의 과정은 인간 정신에 들어 있는 대립적인 요소를 통합하여 자기 안에 수용하는 과정, 즉 ‘전일성(또는 전체성) Ganzheit’을 추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헤세는 이러한 융의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갈등하는 양극성을 인지하게 되고, 두 세계의 조화와 통일을 지향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 『데미안』에서 이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헤세는 이후 많은 작품에서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 전일성에 대한 동경 등을 통해 ‘내면화의 길’,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 즉 ‘자기실현’의 과정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