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한적했던 산골 마을 어린 여자 아이에게 가장 편안한 친구이자 한없이 좋았던 말벗들이 몇 명 있었다.
모두 외롭고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착하고 따뜻한 마음 잃지 않고 열심히 살다가 끝내 행복하게 되는 책속의 주인공들이었다. 들장미 소녀 캔디, 소공녀,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그리고 빨간 머리 앤... .
이번 설날 연휴가 길었던 덕분에 누리게 된 달콤한 책읽기. 이때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책이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이었다.
앤의 끝없는 수다에 귀를 기울이다가 발견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목소리.
그러니까 몽고메리는 앤의 수다 속에다가, 자신이 삶 속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작고 소중한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 놨던 것이다.
“나중에 알아볼 것들을 생각하는 일도 근사하지 않나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면 사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거예요.”
“어떤 일이든 기대하는 데 그 즐거움의 반이 있는 걸요. 혹시 일이 잘못된다 해도 기대하는 동안의 기쁨은 누구도 뺏을 수 없을 거예요.”
“물론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실망할 일도 없으니 다행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쪽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이젠 전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그 모퉁이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거예요. 길모퉁이는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하거든요. 어떤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과 어둠이 펼쳐질지, 어떤 새로운 풍경이 있을지, 어떤 낯선 아름다움과 맞닥뜨릴지, 저 멀리 어떤 굽이 길과 언덕과 계곡이 펼쳐질지 말이에요.”
지금 나이쯤이면 나름 삶에 대해 자신감이 생길 만도 한데 어쩐 일인지 자신감이 쪼그라들고 있다. 거대하고 엄연한 현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자신을 봐야 되는 비애에 젖어들기도 하고... 나름 정답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에 대해 불현듯 회의감이 몰려 들기도 하고...
이런 중년의 아줌마에게 어린 앤은 거침없는 수다로 위로해 주고 있다. 어떻게 삶을 마주해야 할지 가르쳐 주고 있다.
김지유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