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파일에 지역축제가 있어 운주사에 갔었다.
집에서 차로 5분이면 가는 거리라 집에 손님들이 오거나, 안내를 부탁하는 분들이 있으면 가끔 가는 편이다. 그런 경우는 사실 중요한 탑이나 불상들을 중심으로 돌기 십상이어서 꼼꼼히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 축제 때는 안내를 부탁하는 사람도 없고 하여 모처럼 운주사 전체를 자세히 둘러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는 운주사를 보면서 한마디로 심한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를 금하기 어려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상들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뽑혀서 제멋대로 옮겨지고 있는가 하면, 대웅전 뒤에 이축해 놓았던 구 대웅전 건물은 어느새 철거되었고, 대웅전 앞마당 모전탑 주변에 모아져 있던 수십 개의 불두며 탑의 파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일부는 최근에 철거했지만 탑자리 등을 훼손하여 비난을 받았던 나무데크며 밧줄울타리는 여전히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으며, 애초에 없던 ‘산신각’이며 ‘미륵전’ 등 생뚱맞은 건물들이 원래의 우물터며 다랑이논의 흔적들을 훼손하며 새로 지어졌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개천의 석축을 다시 쌓는다며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논둑의 흔적을 발굴도 하지 않은 채 뭉개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스님이 몇 분이나 계시는지 모르지만 이런저런 현판을 붙인 거대하고 호화로운 건물들이 그동안 여기저기에 계속해서 지어져 왔다. 그러고도 또 무슨 불사를 하려는지 기왓장을 쌓아놓고 이름을 적고 시주하라는 행사가 절 한 편에서
계속되고 있다.

국가사적지 안에서 정말 무슨 그리 토목공사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지 갈 때마다 골짜기 안에서 중장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온 골짜기가 탐욕스런 공사판이고, 여기저기 건축자재며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는 난장판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천불천탑의 성지’로 알려진 운주사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 화순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요, 전라남도,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적이다.
새삼스레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운주사 유적 전체가 국가사적지인 것이 그렇고 , 최근에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린 것만 보아도 그렇다.

특히 ‘5.18 광주민중항쟁’ 이후 당시의 사회운동가들이나 지식인들이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골짜기 여기저기에 쓰러지고 깨진 채로 처박혀 있는 탑이며 불상들의 모습을 보며 광주의 그 처절한 패배감과 절망감을 달랬을 뿐 만 아니라, 많은 위로를 받고 새로운 희망들을 꿈꾸기도 하였던 유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 화순군과 ,지역민을 포함한 군민은, 그리고 사찰측은 이런 의미나 사실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 것일까?

물론 방치되어 있던 운주사가 뜻 있는 스님과 보살이 찾아들면서 이른바 중창불사를 시작한 것이 1970년대 말부터이고, 그래서 그 동안 어느 정도 절의 면모를 갖춰 온 것은 필요했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에도 원래 있던 암자를 헐어내고 발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주사의 소박한 불탑이나 불상들의 분위기는 물론 주변경관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창하고 호화로운 대웅전과 주변건물들을 세운 것에 대한 뜻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비판이 상당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운주사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자 이 유적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강화하여 자체 수입을 늘리려는 지자체와 배타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운주사의 성격과 내용을 강화하려는 절 측, 유수한 유적을 활용하여 개발이익을 얻어 보려는 당해 마을주민 등 지역민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이 유적은 이런저런 개발로 몸살을 앓아오고 있는 형편이다.

운주사 경내를 발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잔디광장을 조성한다며 중장비로 마구 파헤쳐 심하게 훼손하였는가 하면, 언젠가는 ‘석조불감’을 복원 한다며 흡사 공사하듯 해체하여 원래의 탑재하고는 전혀 다른 ‘이리 황등석’을 가져다 쓰고, 쇳토막들을 끼워 녹물이 줄줄 흐르게 하여 지금까지 훼손하고 있기도 하다. 경내 한가운데로 전봇대를 설치하여 이를 개선하느라고 막대한 예산이 들기도 했고, 입구에 왜식 불상을 설치하여 비난을 받았는가 하면, 운주사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화로운 일주문을 어느 도지사가 지원하여 세운 것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최근에는 화순군이 무슨 문화관인지 박물관인지를 짓는다며 60억 가까운 예산을 들여 거창한 건물을 지었다가 보관할 유물이 없다 하여 뜬금없이(?) ‘천불천탑사진문화관’으로 변경하였는데 공공재를 거의 사유화했다는 세간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이제 개발이나 불사를 핑계로 자행되는 이 유적에 대한 더 이상의 훼손은 멈춰야 한다. 사적지 안에서는 돌멩이 하나 풀 한포기도 함부로 손대거나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 상식인데 함부로 파 해치고 마구 지어 대고 문화재 관련 전문가나 기관의 자문도 제대로 구하지 않은 채 멋대로 불상이나 폐탑들을 옮기거나 훼손하는 것은 범법행위이다.

화순군도 ‘화순의 팔경’ 중 하나로 지정하였다고 홍보만 요란하게 할 것이 아니라, 이 유적을 보존할 종합적인 계획을 세우고 전담 모니터링단을 꾸려 상시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운주사의 유적과 유물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행정적인 지도와 감독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하며 최근에 사라진 불두며 탑의 파편들도 필요하다면 형사적인 고발까지 해서라도 꼭 되찾아 놓아야 한다.

특히 무원칙한 예산지원은 운주사를 망가뜨려 온 가장 큰 원인이고 적폐라 아니할 수 없으므로 정말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운주사가 가진 독특한 조형미와 의미망을 고려하여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유수한 관광지로서 그리고 의미 있는 수행과 신앙의 장소로서의 운주사를 이제 우리 군민 모두가 나서서 지키고 보존해 나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