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국민정서법(國民情緖法)’이라는 말이 있다. 백과사전을 보면,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법에 빗대어 부르는 용어이고, 이는 실정법(성문법)이 아닌 불문율(不文律)이며, 여론에 의지하는 감성적 법으로 언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 특징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한 국민정서법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부 이후 활성화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일 것이다.

국민 누구나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이라는 사이트에 접속해 들어가 직접 청원을 올리거나 타인이 올린 청원글에 추천 댓글을 달면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공식적인 답변을 하게 되는 구조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에 법의 잣대로 이루어진 판단이 일반 국민의 법감정이나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고 느껴질 경우에는 위 사이트에 접속하여 직접 청원을 하거나 추천을 하게 되고, 그것이 다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쟁점이 확대 재생산된다.

국민청원 제도에 따른 청와대의 답변이 비록 기존 법 질서를 벗어나지 않는 내용으로 다소 실망스러울지라도, 그것이 계기가 되어 때에 따라서는 법령을 바꾸는데 일조하기도 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 정치 참여, 제도개선, 위정자들에 대한 보편적인 국민정서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순기능적인 측면은 위 국민청원 제도가 법규범 무시 풍조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최근 국민정서법상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부산 해운대구에서 일어난 술에 만취한 음주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로 윤창호(22세) 씨가 사망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2018년 9월 25일 새벽 혈중알콜농도 0.134%의 면허취소수준 상태로 외제차를 몰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인도에 서있던 윤창호 씨 일행을 덮쳐 윤창호 씨는 뇌사상태로 투병 중 며칠 전 불행히도 사망하였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흉기나 다름없어 운전에 실력뿐만 아니라 각별한 주의를 요하여 음주로 인한 사고의 경우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뺑소니의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으로 나누어 유형별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교통사고 자체를 과실의 유형으로 보다보니 교통사고 사망사건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음주운전 사망사건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뺑소니 사망사건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으로 지나치게 관대하게 규정하고 있다.

위 윤창호 사건 가해자 역시 사건 발생 이후 47일만에야 구속되고 처벌 형량은 국민정서법상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피해자 친구들을 중심으로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호소에 더하여 국민청원 등을 통한 국민정서법이 작동하여 국회에서 일명 ‘윤창호법’ 발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강화 국민청원에 한 달만에 40만 명 이상이 동의하고, 적극적인 언론 보도가 진행되면서 결국 국회에 윤창호법 발의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 나가고 있는 것은 국민정서법이 작동되는 긍정적인 부분이라 할 것이다.

형법상 미필적고의라는 단어가 있다. 결과발생을 확실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 실현을 적극적으로 의욕한 경우를 ‘확정적 고의’, 결과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실현을 어느 정도 인용하는 경우 ‘미필적 고의’, 결과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실현은 의욕하지 않는 경우 ‘인식 있는 과실’로 나누는데 결국 미필적 고의는 확정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 사이에 존재하는 영역이지만 똑같은 ‘고의범’으로 처벌되는데 이론이 없다.

올해 대한민국 자동차 등록 대수는 2,3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차량 자체가 움직이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하면, 음주운전이나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과속, 횡단보도 교통사고 등에 대하여는 운전자에게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는 것으로 의제하여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기준은 혈중알콜농도 0.05% 이상 면허정지, 0.10% 이상 면허취소 수준이다. 향후 0.03% 이상의 음주운전부터 처벌하도록 법률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음주운전 처벌 기준 알콜농도를 대폭 낮출 필요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음주운전에 따른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과실범’이 아닌 ‘(미필적) 고의범’에 준하여 형사처벌을 하도록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것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명 ‘윤창호법’ 발의에 참여한 전라남도에 지역구를 둔 모 국회의원이 얼마 전 0.089%의 주취상태에서 적발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세상에 가장 바보스러운 행동 중 하나가 술자리에서 술자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거기에는 주량 자랑뿐만 아니라 음주운전 무용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한다. 최근 음주운전 처벌 전력이 공직자로서 승진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하거나 유명인들의 음주운전 물의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등 이제 음주운전은 더 이상 관용의 대상이 아니고 움직이는 흉기를 지닌 미필적 고의범이라는 인식이 국민정서법상 일반화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걸리지 않으면 된다.’거나 어떻게든 ‘단속 정보를 확인’하여 이를 피해 음주운전을 하는 그릇된 풍조 역시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연시 국민정서법에서 출발하여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윤창호법’의 의미를 곰곰 되새겨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