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곡성 목사동에 사는 이재백 소설가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다가오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 국가차원의 기념행사로 격상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하신 전화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이제는 정권교체도 되었고 국가차원의 관심도 높아졌으니 송홍 선생도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내 말에 자기는 아직 그것을 하기 싫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래저래 그동안 보훈처 등 정부의 비우호적인 태도와 갑질(?)로 받은 상처와 상심이 아직도 큰 것 같았다.

그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도암면 운월리 출신인 운인(雲人) 송홍(宋鴻) 선생 셋째 따님의 아들로 친 외손자이니 현재 생존해 있는 운인 선생의 가장 가까운 혈족인 셈이다.
일찍이 모 대학 문창과를 나와 소설가로 등단했으나 지금은 부인과 함께 배농사를 짓는 농민으로 고향마을을 지키면서 농촌의 어려움과 아픔을 글로 쓰고 있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또한 외할아버지의 삶과 정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조부인 이상혁 선생과 운인 선생이 주고받은 간찰과 원고 등을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와는 몇 년 전 운인 선생의 문집을 발간하면서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운인 선생 관련 소식이나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귀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운인 선생이 태어나신 마을이 필자가 사는 곳과 바로 이웃 마을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운인 선생의 문집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그 복사본을 조선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견한 것은 정말로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었다.

2010년 어느 여름날 평소에 존경하는 학자이며 당시 조선대학교 교수이던, 지금은 한국학호남진흥원 원장을 맡고 계시는 이종범 선생을 만나 여담으로 혹시 조대도서관에 운인 송홍 관련 문집이나 책자가 혹시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런데, 원본은 아니지만, 1970년대 초반에 변진복 ,임선호 등 제자들이 국역을 하려다 형편상 완수하지 못하고 당시에 조악한 복사기로 복사본을 만들어 여기저기 보냈던 <운인산고>가 조선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어서 이것을 손에 넣었던 때 기쁨이란 지금도 생각하면 몸이 떨릴 만큼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었다.

그리하여 이것이 2013년 화순군의 지원과 필자의 스승이신 벽초 손평기 선생의 도움을 받아 국역을 하고 <운인유고>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어 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운인 송홍 선생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며, 그 요람이었던 광주고보의 후신인 광주제일고등학교 교문에 그의 흉상이 건립되어 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화순군이 배출한 뛰어난 교육자요, 우국지사요, 독립운동가란 사실을 아는 군민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수많은 제자들이 학생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정부로부터 애국지사로 이런 저런 훈장을 받고 추앙되고 있는 데 비해, 정작 스승이요,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운인 선생은 아직도 무관의 독립운동가로 방치되어 있다.
심지어는 그가 태어났던 마을 어귀나 집터자리에 작은 표석하나 세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그 마을사람들조차도 실은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3.1절은 군이 주관하여 매년 기념행사도 하고 양한묵 선생의 묘소도 참배하는 등 그 의미를 사뭇 강조하고 있지만, 11월 3일 <학생의 날>은 기념식은커녕 누구하나 송홍 선생 묘소 한번 찾아가봤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의 후손이 거의 끊어져 독립유공자 지정 신청을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사실은 그의 조카나 아들 등이 당시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하였다 하여 그동안 정부도 그의 공적을 애써 폄훼하며 모른 채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송홍이 사회주의자였다는 어떤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조카 등이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당시 독립운동의 유력한 수단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해방 후의 냉전적 사고와 잣대로 이를 함부로 평가하고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가 서거한 지 내년이면 벌써 70주년이 된다.
이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정부차원에서도 새롭게 재조명되기 시작하고 있다.
평생을 구국의 일념으로 일관했던 삶을 살았고, 교육으로 나라의 독립을 찾고자 분투노력했던 우리 지역이 배출한 걸출한 한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뜻있는 군민과 우리 군이 나서서 다시 찾고 그를 기리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는 것이 독립된 나라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마땅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운인(雲人) 송홍(宋鴻)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