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면 생각나는 국화(菊花)에 계절, 코스모스 한들한들 가을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남자에 계절, 가을걷이 추수(秋收), 허수아비. 단풍(丹楓), 감 홍시(紅柿), 알밤, 추석(秋夕), 낙엽(落葉), 만추(晩秋) 천고마비(天高馬肥).... 그중에서 국화는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꽃이라.

국화는 천생 가을의 꽃이다. 가을이 제아무리 ‘왔노라!’ 소리쳐도 국화꽃이 피지 않으면 가을은 오지 않은 것이다. 6월의 꽃이 장미라면 가을꽃은 국화다. 국화 향이 은은하다고들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코를 가까이 대면 찡할 정도로 향이 강하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상가(喪家)나 영업집에 여럿 들여놓은 국화 향은 은은하게 퍼져 나와 사람 마음을 다독여준다. 저들끼리 모였을 땐 제 독한 향으로 하여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인간보다 나은 배려(配慮)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저를 예뻐하는 인간에게 소박당하지 않으려고 방향(芳香)을 자율규제 하는 기개(氣槪)가 작동하는지 모른다. 내 마음대로 그런 해석을 붙여놓고선 한낱 식물일망정 삶의 자세를 배울 데가 있다고 여긴다.

중국 삼국시대 최연의 일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로 "큰 종이나 큰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는 너(최염)도 그처럼 대기만성형이다.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틀림없이 네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옛 시인들은 국화를 굽히지 않는 절개의 상징으로 보았다. 하얗게 서리를 맞고도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는 모습에서 그와 같은 메타포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규보(李奎報)는 서리를 견디며 한 해의 끝 무렵까지 피어 있는 국화를 ‘꽃 중에서 오직 너만이 절개를 지킨다’고 했다. 도연명(陶淵明)도 된서리 맞으며 피는 국화꽃을 좋아했다.
추상(秋霜)을 이고 선 모습을 보고 인고(忍苦)의 꽃이라고 여긴 사람도 있었다. 서정주가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한 것도 아마 국화에서 인고와 풍상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화꽃은 드러나게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수더분해서 마치 마음 씀씀이 넉넉한 누님 같아 보인다. 그런 국화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에 방점을 찍고 보면 인생의 간단치 않은 여정이 느껴진다.

서리 맞은 국화가 지고 나면 눈 속에서 매화가 필 때까지 긴 겨울을 기다려야 한다. 꽃을 보려는 사람의 마음도 긴 동면에 들어간다.
옷깃을 자꾸 여미는 걸 보니 가을이 깊은가 보다. 풍류객은 아니지만 아버지 세대가 즐겼듯이 국화꽃 몇 잎 띄운 술 한 잔이 은근히 생각난다. 황국(黃菊) 꿋꿋하게 핀 감나무 아래 평상을 놓고 앉는다면 금상첨화이리.
사람마다 좋아하는 꽃이 각자 다르겠지만 국화를 좋아한 이는 너무나도 많은 듯싶다.

연꽃을 가장 좋아했다는 염계(주렴계)를 생각하며 ‘염계애련’(濂溪愛蓮) 이란 詩를 쓴 퇴계 이황은 연꽃을 사랑함에 ‘모란은 온 세상이 기리고, 국화는 어진이의 심금을 울려 주지만, 연꽃은 염계 이후 천년이나 세월이 흘렀건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며 차마 국화를 내세우고 있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선 ‘아침에는 목란(木蘭)의 이슬을 마시고 저녁엔 가을국화를 씹는다’고 했으며,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는 그의 장편시 국화탄(菊花嘆)에서 나는 국화를 사랑한다며 ‘국화는 비록 내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내 평생 술잔을 들어본 일 없으나/ 내 평생 입을 벌려 웃어본 일 없으나/ 오늘은 너를 위해 웃어보리라’고 했다.
혹자는 ‘불어오는 바람에 국화향기를 맡으려다 세속에 물든 나쁜 것까지 묻어올까 저어하여 차라리 꽃잎을 술에 띄워 마시리라’ 했으며, 이정보는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피었는가/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라 했고, 조선시대 송순도 ‘풍상(風霜)이 섞어 친 날에 꽃 피운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인 양 마라 임의 뜻을 알겠나’ 라 했고, 이규보(李奎報)는 ‘춘삼월 봄바람에 곱게 핀 온갖 꽃이/ 한 떨기 가을국화만 못 하구나/ 향기롭고 고우면서 추위를 견뎌 사랑스러운데/ 더구나 술잔 속까지 말없이 들어오네’라 했으며, 강희맹(姜希孟)은 ‘사시에 철이 바뀌니 봄, 여름 꽃이 시들어지네/ 뭇 꽃들 지고 난 다음 꽃을 피워서/ 맑은 향기 뼛속까지 스미는구나’ 했다
도연명(陶淵明) 한시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동쪽 울 밑에서 국화(菊花)를 꺾어 들고, 멀리 남산(南山)을 바라본다.

‘삼경(三逕)은 이미 황폐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하구나’ 라고 했다.

국화(菊花)에 꽃말을 살펴보면 꽃의 색깔에 따라 다르다.

1. 흰색국화(白菊)에 꽃말은 성실(誠實)과 진실(眞實) 감사(感謝)
2. 노란색 국화(黃菊)는 실망(失望)과 짝사랑
3. 빨간색 국화(紅菊)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4. 분홍색 국화(粉紅菊)는 정조(貞操)
5. 보라색 국화는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

너도 국화를 사랑하느냐.
나도 국화를 사랑한다.
국화의 꽃말은 고결(高潔)이며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서릿발이 심한 속에도 굽히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節槪)이라 한다.
사람들은 일컬어 국화를
萬紫千紅秋風落(만자천홍추풍락) 東籬佳菊傲霜新(동이가절오상신)
(울긋불긋 한 단풍가을바람에 지니 동쪽 울타리 고운 국화 서리 맞아 새롭다)
不是花中偏愛菊(불시화중편애국) 此花開盡更無花(차화개진갱무화)
여러 꽃 가운데 국화를 편애함은 아니지만 이 꽃이 피었다 다하면 새롭게 필 꽃이 없잖은가 그래서 국화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에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일후인정)이란 말이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우리도 가을 국화처럼 향기 나는 인생을 삶으로 서로 사랑하며 온고지신(溫故知新)정신으로 명품화순을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