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 서울에서 어느 중소기업에 다니는 큰딸이 제 엄마 생일이라고 와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중소기업의 노동실태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열악하고 비인간적이었다.
100여명이 일하고 있는 회사임에도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지 못한데, 회사는 행여 노조가 만들어질까 봐 CCTV 등 최첨단의 시설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으며, 심지어 노동자들끼리 휴게시간이나 퇴근 후에도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시간 차이를 두어 쉬게 하고 퇴근시킨다는 것이다.
공휴일에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초과 근무수당이 제재로 지급되지 않고, 병가를 내고 결근을 해도 연차휴가까지 깎아서 임금을 줄이는가 하면 ,노동자들의 개인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제출하게 하여 정기적으로 들여다보고 ,전화 통화내역까지 파악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런 실상은 현행 노동관계법령의 맹점을 교묘하게 악용한 많은 중소기업에서의 일반적인 행태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인 시대인지라 쥐꼬리만 한 임금에 매달려 그런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갖은 수모와 열패감을 감당하며 근무를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바람까지 하는 딸아이를 보는 마음은 안타깝고 힘들었다.
그럼 어떻게든 합법적으로 노조를 만들어서 대항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애꿎은 딸에게 역정도 내보았지만 이럴 때는 정말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이 작은 희망이라도 키우며 일할 수 있는 변변한 일자리 하나 제대로 마련해줄 수 없다는 자책과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한 방송의 보도를 통해 인천공항공사의 일용직노동자들의 여전히 열악한 근무여건과 복지실태를 보면서 딸아이가 생각나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고, 그래서 사뭇 가슴 먹먹하고 짠한 느낌까지 들었다.
세계 최첨단의 시설임을 자랑하며 대통령과 피겨퀸 김연아, 배우 송중기 등 유명인사들 까지 참여하여 화려하게 문을 연 인천공항 제2청사에서 비행기 내부를 청소하는 무려 260여명이나 되는 여성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달랑 한 개밖에 없어 노동자들이 휴식 시간마다 길게 줄을 서야하고 그래서 휴식시간을 거의 허비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는 열악한 실태라는 것이었다.
또 휴게실이 따로 없어 창고에서 비닐을 둘러 추위를 막고 승객들의 짐을 싣는 노동자들은 밖에서 대기하는 것이 쉬는 시간이라고 했다.
세계최고의 허브공항답게 승객들이 이용하는 곳은 휴게시설도 으리으리할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많고 깨끗하고 넓은데 정작 그 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와 대우는 이런 꼴이라니....
정말 이런 실정이라면 시설은 최첨단일 줄 모르나 정작 존엄한 인격을 가진 인간들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5월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무려 1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인천공항공사의 노동자들의 실태가 아직까지 저러하다니 정말 착잡하기까지 하다.
결국 내화외빈! 겉만 번지르르 했지 세계 최첨단이라고 큰 소리 칠수록, 이를 빙자한 노동탄압은 더욱 교묘해지고, 노동실태는 여전히 허술하고 열악하다는 것이 밝혀져 다수 국민의 실망과 걱정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대기업이나 인천공항 같은 공기업들은 이른바 보는 눈도 많고 정부의 관심도 크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근무여건 개선 등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언론에 가끔 저런 식으로 보도라도 되는 것인지 모른다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경우 정부의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 편승하여 교묘하게 노동착취와 탄압을 일삼아도 정책당국자도 언론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사각지대가 될 우려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작년 5월의 정권교체 이후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쌓인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청년일자리를 포함한 일자리 창출과 복지향상의 노력도 정부의 의지와 구호는 드높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에는 아직 이르다 할 것이다.
정부도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급급하기보다 지금 현재의 노동자들의 실태와 노동조건도 면밀하게 살피고 그에 따르는 법령정비 등을 서둘러 제도적인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아울러, 각 사업장마다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노동조건개선 매뉴얼을 만들고 이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통해 노동현장에 쌓인 갖은 적폐를 청산하고 열악한 노동여건 등을 개선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정책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겉으로만 그럴듯하고 구호만 요란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쌓인 적폐가 저절로 없어지고 국민이 행복한 선진사회로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눈물짓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많다면 새로운 대한민국도 적폐청산도 요원한 그림의 떡일 뿐이다.
화순군민신문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