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가 드는 자시 한밤중
한 자나 깊이 눈이 쌓였네
만물을 회복하는 봄기운 넘쳐흐르고
천심을 보니 크고 광대하구나
관문을 닫고 나그네 금하니
양기가 생겨 막 음기를 깨뜨리네
깊은 시름에 한 선이 더해지니
동마주를 정히 마실 만 하구나
冬至子之半동지자지반
雪花盈尺深설화영척심
津津回物意진진회물의
浩浩見天心호호견천심
關閉爲禁旅관폐위금려
陽生初破陰양생초파음
窮愁添一線궁수첨일선
挏馬正堪斟동마정감짐
-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양곡집』 권9 「동지야설(冬至夜雪)」
해설
이 시는 동지(冬至)의 여러 상징을 시 속에 고루 버무려 놓았다.
첫 구절은 바로 소옹(邵雍)의 「동지음(冬至吟)」 중에서 따온 것이다.
동짓날 자정, 천심은 변함없는데
일양이 막 일어나고, 만물이 아직 생기기 전
현주 맛은 담담하고, 우레 소리 정히 고요해라
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다시 복희씨에게 물어보오
冬至子之半 天心無改移 동지자지반 천심무개이
一陽初起處 萬物未生時 일양초기처 만물미생시
玄酒味方淡 大音聲正希 현주미방담 대음성정희
此言如不信 更請問包羲 차언여불신 경청문포희
소옹의 시는 동지의 이치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많이 인용되어 왔다. 본시 3구에 나오는 “회물의(回物意)”는 바로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이 바로 동짓날 시작되는 것을 상징하고, 다음 구의 “천심(天心)”도 소옹의 「동지음」에 나오는 하늘의 중심을 의미한다. “관문을 닫고 나그네를 금한다”는 것은 『주역』의 ‘복괘 상사(象辭)’에 “선왕이 복괘를 보고서, 동짓날에는 관문을 닫고, 행상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며, 임금은 지방을 순행하지 않는다.[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이는 땅속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지극히 작은 양기(陽氣)를 보전하려는 조심스런 마음에서 발로된 것이다. “한 선이 더해지니”라는 것도 복괘의 모양이 여러 음 아래에 하나의 양효가 생겨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동마주(挏馬酒)는 마유(馬乳)로 만든 술인데 위아래로 흔들어서 술을 만들기 때문에 동마주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동지는 고대부터 유구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당나라 때 달력을 만들던 이들은 아득한 옛날 자월(子月 11월) 초하루 갑자일(甲子日)의 한밤중 자정(子正 12시)에 동지(冬至)가 드는 때를 달력의 시작으로 삼았다. 1월 1일이 시작이 아니라 11월 1일이 시작인 것이다. 이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현재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이 그에 해당된다. 밤이 가장 긴 것은 겨울의 음기가 가장 극성하다는 의미이지만 한편으로 그다음 날부터 낮이 점차 길어지므로 양기가 회복된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11월은 『주역』에서 「복괘(復卦)」에 해당하는데 그 괘의 형상은 다섯 개의 음효 아래에 하나의 양효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음에 휩싸여 있으나 땅속에서 남모르게 하나의 양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양이 회복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한겨울 속에 싹트는 생명의 봄을 의미한다. 동지가 한 해의 시작이 된다는 의미 때문에 애기설이니, 동지세배니 하는 식으로 설에 버금가는 여러 가지 동지풍속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지팥죽을 먹으며 불길한 것을 떨쳐버리는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동지와 관련된 고사나 풍습은 윤기(尹愭)의 『무명자집』 중 「동지 고사[冬至記故事]」란 시에 자세히 실려 있으나 내용이 너무 길어서 소개하지 못하니 한국고전종합DB를 통해 살펴보기 바란다. [한국고전종합DB 바로가기]
동지를 통해 하나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펼쳐지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작과 끝이라는 직선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끝이 바로 시작이 되는 순환의 고리가 무한히 이어지는 세계이다. 오늘 나에게 다가오는 끝은 이 무한한 고리 중에 찍히는 하나의 점으로 바로 내일의 시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동안 한시감상에 부족한 글을 올려 독자들의 눈을 더럽혀왔는데 이번이 필자의 마지막 회이다. 오류가 많고 개인적인 감상에 치우친 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격려와 질정을 해준 분들께 지면을 빌려 감사를 드린다.
화순군민신문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