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한문글자로 11이라는 글자가 흙토(土)자와 같다고 하여 그 글자가 겹치는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떠나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떻든 일년 내내 국민의 ‘일용할 양식’을 생산하기 위해 애쓴 농민을 기억해주는 날이라고 하니 우리 같은 농사꾼들 입장에서는 기껍게 자축이라도 하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흔한 기념식이나 자축행사가 열렸다는 소식도 듣기가 어렵다.
더구나 우리 지역에서는 화려한 국화축제에 묻혀 ‘농업인의 날’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도 ‘농업인의 날’이라는 말을 찾아보기가 참말로 어렵다.
여기저기 돌려보는 채널마다 이름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들이 나와서 늘어놓는 말들은 온통 무슨 ‘빼빼로데이’ 이야기뿐이다.

네이버나 다음 등 이른바 포털사이트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더 말한 나위도 없고, 심지어 마을 노인당에서조차 ‘빼빼로데이’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정말로 우리 농업의 가치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은 거의 ,아니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입에서조차 “오늘이 빼빼로데이인데 자네 새끼들한데 빼빼로 사다줬어?” 하고 묻는가 하면 “우리 00가 오늘이 빼빼로데이라고 빼빼로 하고 무엇을 선물로 사왔다네” 하면서 자랑질(?)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흡사 ‘빼빼로데이’인가 하는 날이 무슨 3대 명절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아니 온 나라가 ‘빼빼로데이’ 타령이다.

겨우 한 두 군데에서 좀 개념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우는 ‘가래떡데이’란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될 정도이다.

빼빼로라고 하는 과자가 어느 회사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온 나라에 ‘데이’ 열풍까지 몰고 올 정도로 대단한 상품인 것은 분명하고, 그 회사의 탁월한 마케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제과회사의 영업전략에 휘말려 온 국민이 판촉사원처럼 며칠 전부터 그날을 준비하고 기념해야 하는지 참 씁쓸하고 허탈하기까지 하다.

사실 산업화과정에서 농업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근래에 우르과이라운드(UR) 협정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하여 수입개방이 본격화 되면서 농업이라는 산업은 정책당국자들로부터 사뭇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매일 먹는 먹거리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애쓴 농민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고, 나아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가치를 가르치는 날이 되자고 ‘농업인의 날’이라는데 온 나라가 이토록 관심 없어 하다니 좀 해도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삼일 굶으면 남의 집 울 넘어가지 않을 놈 없다”는 속담처럼 먹거리는 인간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고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안정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대 초반을 맴도는 심각한 실정으로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하루세끼 중 한 끼도 자급하지 못하고 먹거리의 거의 80%를 수입해다 먹으면서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이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빼빼로데이’를 챙기고 기억하는 관심과 열정 이상으로 11월 11일이 먹거리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우리 농업을 챙기고, 농업인의 노고에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이 나라가 정상이고 희망이 있다.

얄팍한 상술에 휘말려 온 국민이 정신줄을 놓고 정체불명의 무슨 ‘데이’나 챙기며 부화뇌동한다면 우리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런 뜻에서 아직도 농업이 주된 산업인 우리 지역에서라도 보름 동안의 그 긴 국화축제 중에 ‘농업인의 날’을 의미 있게 기념하고, 농민들의 노고를 군민과 함께 기억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하루쯤 펼쳐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