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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작성 : 2017년 11월 08일(수) 10:22 가+가-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절대 고독>(1970) -

김현승(金顯承, 1913~1975)
시인
초기에 모더니스트와 이미지스트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 그는 이후 한국 시단의 지성을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 그는 맑고 밝고 뚜렷한 이미지들을 통해 정신의 명징성과 함께 높은 종교적 윤리성을 추구하는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1968년에 그는 시집 『견고(堅固)한 고독(孤獨)』을 내놓으며 초기의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견고한 고독’ 속에서 한결 깊고 진지한 윤리적 실존의 자세를 끌어 낸다.
엄태선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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