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염천에 굿판이다.

노인들만 사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모처럼 제법 크고 신명난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70~80이 된 노인들이 사회를 보시고, 이장 인사말씀도 하시고, 음식수발도 젊은 아낙들이 아닌 할매들이 모두 하신다.

뿐만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하내, 할매들이 8월의 이글거리는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논고사’를 지내고 ,이런 저런 노래를 메기고 받고, 심지어 논매기 모습 재현에 참여하여 몸소 논에 까지 들어가는 수고도 아끼지 않으신다.

화순문화원과 춘양면 농악단의 흥겨운 농악가락은 찌는 듯한 더위마저 훨씬 쫓아내버리고 옛적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척박한 이 땅을 지키고 일구며 아마도 꾸었을 대동세상의 꿈을 아스라한 추억처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풍물패들의 맨 앞에서 대열을 이끄는 <농자천하지대본>을 선명하게 아로새긴 농기와 <우봉리 들소리> 깃발의 위엄과 기상은 아직도 사뭇 짱짱하기만 하다.

이어진 도암면 도장리와 화순읍 내평리의 <도장리 밭노래>와 <길쌈놀이> 민요 공연도 비슷하게 옛노래들을 보존해오고 있는 마을끼리의 우의와 친선을 다지고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여 흐뭇하다.

지난 8월 8일 우리 고장 춘양면 우봉리에서 열린, 옛적 우리 선인들이 모를 심고, 김을 매고, 칠월백중 무렵 마지막 논매기인 만드리를 하면서 온 마을 주민들이 풍년을 기원하고 함께 놀았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4호인 <우봉리들소리> 재현행사 모습이다.

참말로 모처럼 노인들만 계시는 고즈넉한 농촌마을이 사람 사는 것 같은 생기가 돌고, 군수와 군의회 의장의 축하말씀과 덕담이 이어지는 속에서 아재 ,아짐, 하내, 할매들의 주름진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고 참석자들 간에 막걸리 잔이 연거푸 돈다.

마음이 절로 푸근해지고 모두 부자가 된 것 같은 보기 좋은 풍경이다.

어떤 이는 이미 고도로 산업화된 세상에 무슨 캐캐묵은 옛 농사노래 따위를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록 농업과 농촌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어도, 사람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는 동서고금을 떠나 변함없이 ‘천하의 근본’임이 분명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달라졌다고 해도, 오천년 농경민족으로 면면히 내려온 우리의 얼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러한 전통문화유산들이 산업화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문화를 일구고 창달해 나가는 소중한 밑거름인 것도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기에 젊은이들 모두 떠난 농촌마을에서 세월과 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고령의 노인들이 이러한 문화유산을 저버리지 않고 끈덕지게 지켜온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보존, 전승하고 이를 토대로 변화된 시대에 다양해지는 사람들의 관심과 취향에 맞는 새로운 문화형태를 이끌어내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려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이제 지자체의 몫이다.

여력이 있는 대로 전수. 교육시설을 확충하고, 지역 내 문화예술인 및 단체들과 협력하여 전승 및 창작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 선진국들의 예에서 보듯이 마을민이나 지역민들이 능동적으로 애정을 갖고 이를 지켜나가도록 무형문화재 관련 작물 재배 등에 자체 직불제 도입을 검토하고, 정기공연 및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통해 적극 관광 상품화 하는가 하면, 마을축제 등에 예산 및 인력을 넉넉히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또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이 있다.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우봉리 들소리>와 같은 우리 문화의 끌텅(?)들을 바탕으로 지역적인 특색과 지역민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그러면서도 인류의 보편적 정서에 어필하는 다양한 문화형태를 이끌어낼 당위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우리 지역이 민족문화를 지키고 창달하는 선두에 서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지역민이 높은 자긍심 속에서 수준 높은 문화의 향기를 누리며 사는 명실상부한 ‘남주명향 화순’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성인 대표:010.3607.0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