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다, 대통령 탄핵이다, 세월호 인양이다, 대통령선거다 하여 세상은 어지럽기만 해도 어김없이 추운 겨울이 가고 다시 춘삼월 꽃피는 봄은 왔다.
기상학자들 말마따나 기상이변으로 날씨가 더워진 탓인지 이제는 봄이 오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 그야말로 사방이 꽃 천지가 되곤 한다
올해도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 매화꽃, 산수유가 피는 가 했더니 어느새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사꽃, 살구꽃에다 수선화며, 유채꽃이며, 이름 모를 들꽃들까지 함께 피어나 사방이 사뭇 꽃 대궐을 이루고 있다.
시골에도 사람이 우글(?)거리던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때가 되면 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국수라도 삶고, 미나리 뜯어다 홍어라도 무쳐서, 술동이깨나 짊어지고 뒷 잔등에라도 올라가 진종일 화전놀이를 하는 것이 마을마다의 풍속이었다.
1980년대에는 숨막힐듯 한 군사독재의 폭압이 극에 달했지만 이 틈에서도 마을에서나 무슨 계에서 어떻게 차라도 한 대 빌려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봄나들이도 가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노인들만 남은 시골에서 화전놀이는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고, 객지에 가 있는 자식들이 효도관광이네 뭐네 하면서 버스라도 빌려주어 동네사람들끼리 봄나들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큰 행운일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 앞 시냇가에도 개나리꽃이 원도 한도 없이 흐드러지다가 이제 서서히 지고 있다.
그러나 그 찬란한 노랑빛깔 속에서 봄의 충만한 생명력을 느끼거나, 따습고 오지게 살던 추억을 되살리기보다 오히려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의 기억을 떠올리곤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이 기적을 바라며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 날,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대부분 고등학생인 304명이나 되는 국민이 단 한명도 구출되지 못한 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면서 수장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한없이 절망하였다.
아니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과 그와 결탁한 탐욕스런 부자들의 횡포 속에서 속절없이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분노하였다.
그로부터 1000일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자는 그 분노와 슬픔을 잊지 않고 애면글면 촛불을 든 국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지고, 내달인 5월 9일, 대통령을 다시 뽑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 3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또 다시 힘겹게 한 고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친일과 독재부역세력을 척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피는 속에서 부패와 특권이 없는 공정한 나라,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갈 책임과 의무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촛불민심의 대의에 입각해서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적임자가 누구인지, 이른바 외세나 적폐세력과 교묘하게 결탁한 후보는 혹시 없는지 눈 부릅떠 살피고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난만한 봄날에 세월호 리본빛깔을 닮은 개나리꽃을 보면서 대동세상의 추억과 함께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분노와 슬픔을 선명하게 떠올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화순군민신문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