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일기3

홍윤숙

밤이면
별들이 수런수런
뜰에 모였다.

십리밖
먼 여항에서도
창마다 밝은 연꽃등
물에 어리고
창마다
사철 나무 푸른 그늘
뜰에 지는 집

피리불던 아이들
고운 잠 들고
숙영낭자전 읽으시던 어머니

깜박 조으시면
벽의 산수화 혼자
밤을 지켰다.

탄피 뿌리는
겨울비 속
캄캄한 12월의 표류를 타고
마지막 차로 돌아가는 집

사랑은
내가 내생애를 걸어서
도착하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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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향이 묻어나는 맑은 공기, 투명한 살얼음, 가슴이 아리도록 쌩쌩한 바람, 떠나버린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 겨울인 거 같다.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홍윤숙시인의 ‘겨울, 사랑의 일기 3편’.

이 시의 백미(白眉)는 맨 마지막 구절 ‘사랑은 내가 생애를 걸어서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집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故홍윤숙 시인은 부모가 잠시 이향해 있던 황해도 연백군에서 출생하여 바로 평북 정주군 마산면 신오리로 귀향했다가 다시 서울로 이주해서 청소년기 이후 죽는 날까지 살았다.

그녀의 시에는 이향민으로서의 정서가 진하게 깔려 있으며, 타관살이를 견딜 수 있게 했던 힘은 ‘어머니’의 존재 였다.

‘어머니’와 ‘따뜻한 집’이 있기에 그녀는 ‘인생의 먼 여정’ 에서도 돌아갈 길을 근심하지 않으며 평생을 걸어서 그녀의 집에 당도한 거 같다.


홍윤숙(洪允淑, 1925~2015)

황해도 연백 출생.
서울에서 성장하면서 동덕여자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하였다. 6·25 동란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 <신천지>에 <낙엽의 노래>, <예술평론>에 <가마귀>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원정(園丁)>이 당선되기도 하였고 그 해에 희곡 <무너진 땅>을 <현대문학>에 발표, 시극 <여자의 공원>은 국립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75년에 제7회 한국시인협회상을, 1985년에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1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1993 문화훈장, 1995 제4회 공초문학상, 1997 대한민국 문학부문 예술원상, 2002 제16회 예술부문 춘강상, 2012 제4회 구상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