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歸蜀道)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울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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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이 시를 처음 접했다.

미당(未堂)은 이 시를 1940년도에 썼다고 한다.

당시 국어를 담당한 선생은, 우리에게 ‘이 시는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한((恨)을 미당이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詩’라고 설명해 주었다.

‘시’에 대한 해석도, ‘시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지만, 나는 이 시가 思春期이던 시절에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이 첫 구절이 참으로 가슴 아렸고,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이 왠지 가고픈 곳이 되었다.

成年이 되어 실크로드(Silk Road)도 西歐도 모두 가 보았지만, 난 그 시절 詩句에서 느꼈던 가슴아린 감동들은 마음에서 일지 않았다.

12월 햇살이 조금은 쓸쓸하게 내리는 오늘, 나는 ‘詩가 흐르는 水요일’에 이 시를 부치고 싶다. 아무런 이유없이....

서정주(徐廷柱, 1915 ~ 2000)

시인.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堂).

1925년 줄포보통학교를 수료, 1929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하여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 이로 인해 퇴학당했다. 1931년 고창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으나 곧 자퇴, 방랑을 하다가 고승 박한영 문하에 입산하였다. 서울 대한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壁)이 당선되었고, 같은 해에 김광균, 오장환과함께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냈다.

1941년 동대문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동아대학교·조선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1960년 이후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 2000년 12월 24일 사망했다. 향년 86세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으며 시집으로 “화사집”(1941), “신라초”(1960),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1962년 ‘5·16 문예상’ 본상,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0년에는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정부에서는 2000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으며, 중앙일보사는 2001년에 미당문학상을 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