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이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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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다.
해마다 12월이 오면 가슴 속에 쌓였던 회한들이 옷을 벗고 나와서 춤을 추고
반면, 내 마음은 침잠(沈潛)한다.
그래서일까?
왠지, 나도 모르게 윤동주의 자화상을 읊조려 본다.
비단 나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의 詩 행간에서는 언제나 맑고 투명한 바람냄새가 난다.
시인의 친구였던 문익환씨도 “나는 그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넋이 맑아짐을 경험한다”고 회고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윤동주시인이 후세들에게 주는 선물은, 그의 순결한 영혼의 울림이 전해주는 순수한 빛이며 나는 그 선물을 고맙게 받고 있다.
오늘은 북적거리는 현실을 벗어나 내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며 마음의 다스림을 갖는 시간을 갖고 싶다.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9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