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 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 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영혼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로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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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물빛은 하늘빛을 닮는다 했던가?

하지만,
최소한 나의 경우는 물빛은 내마음의 빛으로 보인다.

섬진강은 언제나 에메랄드 물빛이다. 상류부터 하류까지,,
섬진강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맑은 강바람에 흔들리는 잔물결이 아름다운 강이다.

언젠가 복숭아꽃이 만개한 날,
나는 길도 모르면서 정처없이 차를 몰고 가다가 황토빛 밭 둔덕에 다다라, 차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어 멈췄다. 좁은 길을 걸어서 내려가 보았더니 강가에 자그마한 매운탕집이 자리하고, 울타리도 문도 없는 식당 앞 너른 마당에는 평상이 평화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빨래줄에는 갖가지 색상의 염색천들이 강바람에 휘날리고, 하늘에는 햇님이 방긋 미소를 짓고있는...

나는 그 날 그 곳이 섬진강 상류라는 걸 알았고,
그곳에서 마종기님의 이 시를 조용히 읊조려보았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섬진강은 이미 내 마음 속을 오래 전부터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종기(馬鍾基, 1939년 1월 17일 ~ )
대한민국 시인, 소설가, 영상의학과 의사, 대학 교수이다.
1939년 1월 17일 일본 도쿄출생.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마해송(馬海松)이며, 어머니는 무용가 박외선(朴外仙)이다.부모로부터 예술적 자질을 물려받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쓰기를 좋아했고 중학생 시절에는 이미 당대 ‘학원’ 문단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1959년, 시 ｢해부학 교실｣ 등의 작품으로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1960년에는+ 첫 시집 『조용한 개선』을 상자했다
1966년 도미, 1968년에는 김영태, 황동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 1』을, 1972년에는 『평균율 2』를 출간하는 등 꾸준히 창작활동을 했으며 이후에도 2010년 출간된 『하늘의 맨살』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계속해서 문제적 시집을 출간하면서 이수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한 뒤에는 매년 봄과 가을, 한국을 방문하면서 연세대학교 초빙교수로서 강의를 하고 시집과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등 아직 문단의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