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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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터넷 뉴스에서 시리아 난민을 태운 배가 지중해에서 침몰했는데, 구명조끼입은 한 남자가 자신의 어린아이를 안고 100미터 남짓 남은 그리스 해안을 향해 헤엄쳐 가는 사진을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아버지의 품에서 천진난만· 평온해 보였고 아버지는 생사의 기로에서 절박한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동시에 보여졌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무사하기를 원하는 댓글을 달았고 나 역시 코끝이 시큰해 진 그날 아침.
다시 한 번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비단, 내 아버지 뿐만 아니고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외로운 등 뒤 모습을...

김현승(金顯承, 1913~1975)
시인, 호는 다형(茶兄). 평양 출생

목사인 아버지의 목회지(牧會地)를 따라 제주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7세 되던 해에 전라남도 광주로 이주, 기독교계통의 숭일학교(崇一學校)와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숭실전문학교 문과 3년을 수료.

숭일학교 교사(1936), 조선대학교 교수(1951∼1959), 숭전대학 교수(1960∼1975),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1970) 등을 역임. 문단활동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장시(長詩)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梁柱東)의 추천으로 ≪동아일보≫(1934)에 게재되면서부터 시작.

그 뒤 1953년부터 광주에서 계간지 ≪신문학 新文學≫을 6호까지 간행했고, 이때의 시로 ＜내가 나의 모국어(母國語)로 시(詩)를 쓰면＞(1952)이 있으며, 시적 방법의 특징은 절제된 언어를 통한 추상적 관념을 사물화(事物化), 구체적 사물을 관념화하는 조소성(彫塑性)과 명징성(明澄性)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후기 시세계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제3시집 ≪견고(堅固)한 고독≫(1968)과 제4시집 ≪절대(絶對)고독≫(1970)의 시세계는 신에 대한 회의와 인간적 고독을 시적 주제로서 줄기차게 추구함을 보여준다.

1974년에는 ≪김현승전시집 金顯承全詩集≫을 펴냈고, 유시집(遺詩集) ≪마지막 지상(地上)에서≫(1977), 산문집 ≪고독(孤獨)과 시(詩)≫(1977)가 간행되었고, 문학개설서로는 ≪한국현대시해설≫(1972)이 있다. 1955년 제1회전라남도문화상, 1973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광주 무등산도립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