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

김영언

여린 풀들 몇 가닥
비쩍 마른 종아리를 치켜들고
무너진 장독대를 기웃거린다

소문 없이 굵어진 감나무 가지 끝에서
행여 소식이라도 떨어져 내리지
않을까, 않겠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다만
아무 가져갈 것 없이 가볍게 떠난 자리

옹기종기 그림자들 묻힌 자리에선
여윈 버섯들 자잘한 그리움으로 피고 지고
밑 빠진 대항을 넘성거리는
여린 풀들 몇 가닥 같은 발자국들아
도회지 팍팍한 삶처럼 뒤꿈치 굳은 살 갈라진
늙은 감나무 밑둥 같은 얼굴들아

두런두런 쌓이는 이슬이 가녀린 바람마저 잠재우면
길은 산발한 잡풀 속에 잠들어
행여 거친 꿈에 시달리는지 자꾸만
깊은 도랑 속에 뒤척뒤척 몸을 빠뜨리고

소문 없이 잔가지 무성해진 감나무는
그 새벽 풀숲으로 여전히
풋감들 수북수북 떨군다, 이제
아무도 그 세월을 주워 가지 않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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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인천 앞바다에 있는 자월도에서 나고 자랐다.

‘세상을 살면서 때때로 삶이 건조하고 허전해질 때마다 문득 추억 속으로 찾아가 만날 수 있는 노란 은행잎 같은 시 한 편이라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인생은 그렇게 마냥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김영언시인.

주울 수 있는 세월의 향기를 만끽해야할 시간들은 지금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시인은 우리에게 그 시간들을 놓치지 말고 주워 담으라고 이 시를 통하여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김영언(金永彦)

시인. 1962년 인천 자월(紫月) 출생.
제물포고,인천교대, 서강대교육대학원 졸
인천 자월고 국어교사
1989년『교사문학』으로 등단. 2000년 계간『다층』 신인상 수상.
시집『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집 없는 시대의 자화상』이 있음.
민족문학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