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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작성 : 2015년 06월 16일(화) 09:29 가+가-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이해인

손 시린 나목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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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세속인, 종교인을 떠나 우리네 삶에서 '오늘'이라는 현실은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고 우리는 보름달처럼 완전하고도 충만된 '내일'의 삶을 꿈꾼다.

오늘은 비록 반달로 떠 있을 지라도, 언젠가는 보름달과 같이 맑고 높이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또 그리 되기를 희망하는 우리들의 영혼 갈구를 이해인수녀는 시 행간에 펼쳐놓았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의 문단을 뜨겁게 달군 이해인 수녀의 시에 대해 평론가 구중서씨는 수녀의 시가 절대자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표현한 종교시이되, 관념적이지 않고 사뭇 인간적이어서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다시말해, 정열·욕구·번민 등 모든 인간적 갈망은 그 사랑을 위한 땔감이지만 이해인수녀의 시는, 절대자에 대한 사랑의 땔감을 자처한 자의 고결한 순명(順命)을 여과 없이 보여줘 아름답다는 평이다.

이해인(李海仁, 본명 이명숙 1945. 6~)

수녀, 시인.
본명은 이명숙, 해인은 필명이다. 자연과 삶, 수도자의 바람 등을 서정적으로 써 내려간 시인이다. 어려서 시재(詩才)가 있었고, 언니가 가르멜 수도회에 입교, 수녀가 되는 것을 보았고, 고등학교 시절에 수도자의 삶을 살기를 결심했다. 성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후 1964년 부산의 올리베타노의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입회 후 가톨릭 계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소년〉에 해인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투고했다. 수도자 서원 후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했고,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1992~97년 수녀회 총비서직을 수행했고, 1998~2002년 부산 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시집으로 〈민들레의 영토〉(1976), 〈내 혼의 불을 놓아〉(1979),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3)를 비롯해 10권의 시집을 냈다.

엄태선 기자 hoahn01@hanmail.net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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