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가 했더니 어느새 꽃잎이 진다. 흐드러진 봄기운 속에서 속삭이는 꽃잎들이 서해 백령도의 젊은 해군 용사들의 넋처럼 짧은 봄을 못내 아쉽다. 벚꽃이 눈꽃처럼 쌓인 봄날 애꿎은 비바람에 흩날리니 송순(면앙정)의 봄 꽃날 시 한수를 억누를 수가 없는 낙화처럼 지는 바람이 야속하다.

꽃이 진다하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슴하리요/(희짓는:휘젓는, 희롱하는 새와:시기하여)

◈ 무등산의 3대 석경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이 없고 다만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지며 혹은 고려 초의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규봉암 옆에 있는 하늘을 찌를 듯 기암괴석들이 광석대, 입석대, 서석대는 무등산 3대 석경(石景)으로 꼽힌다. 규봉암에 오르자면 화순방면에서는 이서면 영평리 장복동 마을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광주시 무등산도립공원 증심사지구에서나 원효사지구의 탐방로를 주로 이용한다.

◈ 요산요수(樂山樂水)의 화순

올봄은 유난히 봄날 변덕이 심한 여인 같다더니 참으로 야속한 날이 많다.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의 온갖 화초들이 고개들 들고 올라와 대자연의 파라다이스를 연출한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에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어디 간들 있을 것인가.

느끼는가 했더니 비바람은 심술을 부린다. 꽃이 피자 단 3일을 못 참는다. 작심삼일이다. 비마져 내리고 바람이 불어 꽃잎은 온갖 몸부림으로 아양을 떨며 자신을 감추어 보려 하지만 역부족인양 맥없이 길바닥에 떨어져 아름다운 눈처럼 벚꼿은 휘날린다.

쉬엄쉬엄 걸어서 눈에 익은 산길 일행들과 세상사 가정사 인간사 이야기 동호인들을 안내하며 화순 자랑을 늘어지게 한다. 언젠가 화순사람이 나도 다 되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들면 고향이란다. 광주 봉선동에서 화순으로 이사 온지 어연 15년이 지난 것을 느낀다.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되었다. 화순군민신문에 칼럼을 쓴지 5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세월이 유수와 같다. 인생은 잠깐 불다간 바람 같다는 옛 시인들의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나는 나이가 온 것인가. 산길을 밟으며 무등산의 아득히 돌이 서있는 규봉암을 따라서 입석대, 서석대, 장불재를 따라서 조근조근히 걷는다. 인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무엇이 세상사 그리 바쁜가? 날마다 무슨 일이 그리 많이 생겨나는지......산사람들과 만나서 호연지기를 누리며 이 대자연에 먼지 같은 한 인간이 초라하게 산길을 걸어간다.

“사는 것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는 것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는 어는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산이 좋아서 산에 가고, 들이 좋아 들에 가고, 물이 좋아서 강에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 인간은 산과 강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규봉암 가는 길을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쉬는 곳마다 화순문인들의 시비도 세우고 하니움에 화순인과 출향인들의 문학공원도 세운다면 얼마나 멋이 있고 청소년들과 출향인 고향사람들의 정서가 좋아질 것인가? 문화원에서라도 주관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장불재 규봉암가는 길
화순이라는 표지석이 등산인들을 반긴다. 다들 여기가 화순땅인가?하고 놀랍다고들 고개를 기웃거린다. 몰랐다는 것이다. 무등산하면 모두 광주땅인 것으로 알고들 올라온 것이다.

아득한 날에 무등산 정상부에서 쏟아져 내려온 수많은 돌들이 약 3km 남짓 깔려있다. 인도의 지공스님이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그의 제자인 나옹선사가 스님의 이름을 따라 지공너덜이라 했다고 전한다. 30여분을 동쪽으로 걸어서가 석굴암이 나오고 신비스런 돌기둥에 범종각이 보인다. 봄비 안개에 쌓인 장불재 백마능선 무등산은 한층 신비감을 전설처럼 더해 온다.

규봉암에서 다시금 조물주의 위대함과 거대함에 찬사를 느낀다. 주변 바위면에 수많은 이름을 새긴 관찰사 암행어사, 목사들, 군수, 현감들이 한낱 티끌 같은 욕망에 눈이 멀어 여기까지 올라와 백성은 돌볼 시간은 없으면서 그 잘난 이름들과 자연을 훼손하면서 까지 정을 들고 어찌 저렇게 자기만의 이름을 새긴단 말인가.

누가 저 사람들을 기억하며 좋게 말 할 자. 여기 올라 온 사람 중 한사람도 없을 것이며 욕만 할텐데 말이다. 죽어서도 욕을 얻어먹고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 규봉암의 창건비화
절의 창건연대는 문헌상에 뚜렷하게 나온 것이 없는 모양이다. 서두에 필설을 했듯이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에 전하는 설화에는 전생에 이곳을 찾은 적이 있는 의상(義湘 625-702) 스님이 이승에 와 바위틈에서 흐르는 물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음을 이이하게 여겨 절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 신라 말의 도선(道銑 827-898) 국사가 이 절의 은신대에 올라 조계산의 산세를 살피어 지금의 송광사 가람의 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또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은 절 주변 삼존석과 십이대에서 수도 득도했다고 한다. 혜심은 우리 고장 화순읍 출신이다.

규봉암 절 자체는 작은 암자에 지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얽힌 사실이 많고 이 곳을 중심으로 무등산의 대표적 절경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고려 명종때(1170-1197)의 시인 김극기(金克己)가 규봉사를 찾아 읊은 시가 전한다.

괴상한 모양 무엇이라 이름하기 어려운데/ 올라와보니 모든 것이 눈아래 있네/ 돌모양은 비단을 잘라 만든 것 같고/ 산 형세는 옥을 깍아 이룬 것 갔네/ 좋은 곳에 오니 세상 티끌 끊었고/ 그윽히 사니 도정(道情)이 더 하네/ 어쩌면 세상일 다 버리고/ 여기 꿇어 앉아 무생불법 배울거나/

현재 절에는 특별한 유적이나 유물은 발견도지 않았다. 땅위에 흩어져 있는 도자기파편이나 기와의 조각 그리고 가까운 석불암 마애불에서 규봉암의 내력과 역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관음전은 팔작지붕과 앞면과 옆면 각 3칸씩 깍아 세운 듯한 볼병풍 같은 절벽아래에 자리 잡고 있아. 관음전 뒤편에는 마애불을 안치한 석굴이 있다.

한참을 비를 맞으며 규봉암 이리저리 신비한 천하의 절경 비경을 구경하다 보니 도공스님이 차 한 잔을 하고 가라는 인연을 베푸신다. 주지 스님은 출타 중이고 무안 목우사의 도공스님이 잠깐 계시라고 해서 온 것이라고 스님을 간단히 소개를 한다.

중국에서 온 차라고 한데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서 마땅한 생필품이 부족할 것 같은데 송구한 마음이 울꺽 돋아난다. 아주 앙징스러운 아주 작은 차잔에 일행들에게 차를 권하면서 오늘날의 세태와 친환경 문제, 인구 문제 등을 스님의 청정한 마음에서 나오는 시각으로 풀어 주어 오랜만에 마음이 맑아 온다.

장불재 백마능선

암자에서 스님과 차 한잔

규봉암

규봉암의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