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지어내는 시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 모습, 바로 고인돌의 자태가 아닐까.

청동기 시대 족장들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은 지배자의 서슬도, 피지배자의 고달픔도 세월 속에 풍화시키고 그저 고즈넉이 서 있을 따름이다. 거대한 인공물의 조형으로 사후에도 위용을 잃지 않고자 했던 인간의 오만은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억겁의 침묵 속에 살을 깎아만 했으리라.

잡초와 잡목 더미 속에서 핑매바위, 마당바위, 각시바위, 감태바위, 고양이바위 등등, 전설의 뒤안길을 돌아온 고인돌의 풍모는 눈매가 부드럽고 사려 깊은 노인을 연상시킨다.

2000년에 화순, 고창, 강화 고인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특히 우리 고장 화순군 일대의 고인돌군은 채석장으로 짐작되는 터와 함께 발굴되어 선사 시대의 숨결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도 드문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매년 화순군에서는 4월이면 고인돌축제를 성대하게 개최한다. 화순군 일원의 고인돌 유적지가 다른 곳보다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 또한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다.

반만년에 이르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 날 우리 앞에 정체를 드러낸 선사시대의 조상을 만나는 일이 감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사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만남은 신중해야 한다.

"시간의 뚜껑을 열자"라는 주제가 암시하듯이, 화순군 고인돌축제는 입체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지역민의 날"로부터 시작되어 노래자랑, 장기자랑, 민요공연 등과 선사시대인 퍼포먼스 등등 다채로운 행사들을 자랑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다채로움이 오히려 고인돌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전락시켜버릴 수도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생성시키고 또한 소멸시킨다. 생성과 소멸이 대립 개념이 아니라 동일 개념임을 터득할 수 있다면, 선사와 현대의 경계 역시 부질없음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고인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선사와 현대를 아우르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다.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역학 관계, 더 나아가 세월의 역학을 터득하고 묵묵히 서 있다. 그러나 고인돌은 그저 무심코 지나쳐가는 구경꾼들에게만큼은 그 이야기들을 아낄 것이다.

무릇 모든 유적지가 그러하듯이, 고인돌 역시 우리들에게 세월을 가늠하는 안목과 세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가슴을 얻는 도구로 부족함 없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문화 유적인 고인돌을 기념하는 축제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정신적 자긍심을 키워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