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2006.3.22. 제14회 세계물의날을 맞이하며 이근 단장 과의 인터뷰.


<세계 물의 날 특집>""물줄기가 건강해야 사람들의 삶도 아울러 건강해질 수 있
지요”

“주암호는 광주·전남의 식수원입니다. 하루 60만 톤을 이용하는 우리에게 주암호
는 어머니의 젖 줄기만큼 귀한 생명수지요.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은 어머니의 젖
을 먹고 자라고 주암호의 물을 마시고 자랄 것입니다. 그러니 아끼고 보호해야지
요.”

주암호감시단 이근(58·화순군 화순읍) 단장은 물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한다.

오늘은 UN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올해로 14번째를 맞는 ‘세계 물의 날’, 1년 중 이날 한 날을 물의 날로 정한 것은
물의 소중함을 1년 중 하루라도 되새겨보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겨우 일 년
중 하루만 물이 귀중하다고 알려서야 될까?

‘물의 날’인 오늘은 마침 ‘수(水)요일’이다. 요일을 정할 때 해(日)와 달(月)은 물
론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흙(土) 등 5행(五行)을 본 따 이름을 정한 선
조의 깊은 뜻이 느껴진다.

1년 중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에 하루씩 수요일마다 물의 소중함을 생각해보자.


“오일 전쟁? 이제는 물 전쟁!”


“비가 와야 해. 비가 와줘야 해.”
주암호를 바라보며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 주암호 감시단 이근 단장.

이 단장은 이제나 저제나 주암호 걱정이다. 우산 장수 아들과 짚신 장수 아들을
형제로 둔 어머니처럼 비가 많이 와도 또 너무 안 와도 걱정이다.

“지금이 갈수기라 만수 때의 28% 정도밖에 물이 안 차 있어요. 만수 때 양이 8억
만 톤이니까 양으로는 2억2천여 만 톤, 깊이로 따지면 한 4미터쯤 될까요? 저쪽
에는 바닥이 보이는 곳도 있어요. 비가 좀 와줘야 해요. 하지만 너무 많이 오면
또 걱정이지요. 온갖 쓰레기가 주암호로 떠밀려오기 때문이에요. 그럼 또 주암호
가 오염되지요.”

주암호를 바라보는 이 단장의 표정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의 표정과 흡사하다.

이 단장은 매일 아침 주암호 상류에 위치한 감시초소로 달려간다. ‘환경오염 신
고 128’이라 쓰인 까만 지프차가 그의 튼튼한 다리가 되어준다.

주암호를 따라 14킬로미터를 돌며 지난 밤 혹 주암호 주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
았나, 오·폐수가 흘러들지 않나, 밀렵된 야생동물들이 주암호 주변에 잘못 버려
진 건 아닌가 곳곳을 살핀다.

쓰레기가 있으면 쓰레기를 줍고, 잘못 흘러들어온 오·폐수가 있으면 원인을 찾으
러 이리저리 발길이 바쁘다. 밀렵된 뒤 비려진 야생동물도 썩어 주암호를 오염시
킬 수 있기에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주암호에 흘러들어오는 80여개 가량의 샛강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샛강이 살아야 큰 강이 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루 같이 해온지 벌써 7년. 이 단장에게는 그새 든든한 동지가 생겼
다.
광주와 전남사람들의 젖줄 ‘주암호’를 지켜내는 환경보호운동단체인 주암호감시
단의 1,400여 회원이 바로 그 동지들이다.

“나는 수몰민이에요. 주암댐이 생기면서 고향인 송광면 낙수리도 저 댐 밑으로
사라졌지요. 하지만 그곳은 아직도 내 고향입니다.

아름답게 지켜야 할 고향. 하지만 이제는 광주·전남의 젖줄이 되었으니 더 깨끗하
고 맑게 지켜야지요. 그래서 이 감시단 일을 시작한 겁니다. 감시단 회원들 모두
그런 마음으로 모인 거고요.”


이렇게 ‘물을 지키자, 후손들에게 맑은 물을 남겨주자’는 한마음으로 함께 해온
이 단장과 주암호감시단은 그 활동을 인정받아 환경부장관 표창을 비롯 수질·대
기 부문 광주·전남 환경 대상, 영산강유역환경청장 표창, 한국수자원공사 물 사
랑 실천 사례 우수상, 영산강유역환경청장 표창 등 수많은 상과 공로패를 수상하
였다.

하지만 이 단장은 수많은 상보다 주암호감시단의 일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
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아주는 사람들 때문에 더 힘이 난다.

“물론 상을 받을 때도 행복합니다. 우리의 일을 인정해 주시는 거니까요. 하지만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이 주시는 상보다 가까이서 우리를 지켜보고, 주암호의 물
을 마시는 분들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지요. ‘좋은
일 해 주시니 고맙다’ ‘우리도 함께 하겠다’ 하실 때 가장 보람됩니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본 종자기처럼 자신의 일을 ‘알아봐주는’ 사람들 때문
에라도 이 단장은 주암호를 깨끗하게 지키는 일에 게을러질 수가 없다. 오히려
‘처음 그 마음으로’라는 말을 더 깊이 새긴다.

“물은 정말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자손손 이어갈 것인데 당연하지요. 더구나 주
암호는 지역민들이 매일 마시는 양식이기 때문에 더욱 깨끗하게 지켜내야 합니
다.

2010년이면 우리나라도 물이 부족할 거라 합니다. ‘물 쓰듯 쓰다’는 말은 이제 옛
말이 되었습니다. 당장이 아닌 미래를 봐야지요. 오일 전쟁이요? 이제는 물 전쟁
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환경청 등의 관청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실 물 우리가 지
키는 건 당연하지요.” 이 단장은 “우리가 마실 물이니 우리가 귀하게 여기자”는
당부를 몇 번이고 했다.

우리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물과 함께 생명을 키워왔다.
물을 아끼지 않으면,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머지않아 물은, 생명이 아닌 재앙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교차로신문 : 취재 : 최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