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수능 부정의 회오리가 폭풍이 되어 이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갈수록 확대되는 사태 앞에서 국민들, 특히 일평생 몸 바쳐 교육에 종사해 온 많은 이들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그저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부정을 저지른 수백 명 학생들의 전도는 어찌될 것이며, 수년간 부정 시험에 의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선량한 많은 학생들의 피해는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수능 시험장은 12년간의 학교 교육이 결산되는 장소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학교 교육의 면모가 수능 시험장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붙고 보자’, ‘어떻게든 붙게 하자’로 대변되는, ‘어떻게든’이 판을 치는 수능 시험장은 어떻게든 일류 대학을 가고 보자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중등학교를 시녀로 전락시킨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학교’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자리 매김 되는가.
세계의 대학 중 150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대학이 바로 우리 교육을 담보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교육의 목표를 홍익인간의 양성에 두었다. 홍익 이념의 실천은 이기의 성채를 허물었을 때라야 가능하다. 이는 교육 기관에서만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학교의 연대 교육을 강조해 왔다.
정보화 시대가 진전됨에 따라 개인은 사회로부터 점차 고립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이 사회화를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증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의 고립을 더욱 부추기는 양상을 보인다.
해체되는 가정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익을 목전에 두었을 때 가족간의 피는 결코 물보다 진하지 못하다. 가정마저도 이익공동체화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학교는 공교육의 붕괴를 우려하는 지경에 처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건전한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조화롭게 통합되어, 타인을 이롭게 하는 가치관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가정은, 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일류대학 합격만을 한 목소리로 강요하고 있다. 지금의 이 사태는 올 것이 왔을 뿐이다.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들의 처벌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수능 부정행위가 과연 휴대전화만으로 이루어졌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제보된 내용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된 것으로 보아, 통신 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는 틀림없이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교정을 위한 처벌은 교육의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용이하지 않음이 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일벌백계는 형평성이 전제된 다음에라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노출된 부정행위자만을 처벌하는 것은 은닉된 동일 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을 저지른 자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일은 더욱 비교육적인 처사이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차제에 대입 제도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교육부에서 발표한 대입 개선안대로,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줄이고 고교 내신 성적의 비율을 높이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은 극히 회의적이다.
오히려 인성 교육은 더욱 황폐화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홉 줄이 지배할 고등학교 교실에서 치열한 줄타기 전쟁이 벌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줄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급우의 등을 밟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스킨 쉽을 나누는 급우는 간 곳 없고 치열한 경쟁자만이 남는 것이다.
고등학교 3개년 과정 내내 점수에 목을 매다는 학교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점수 위주의 혹독한 교육을 받은 그들이 장차 일구어 갈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번 사태는 지난번 교육부에서 발표한 대입 제도 개선안을 인성 교육 측면에서 재고케 한다. 어떤 제도일지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문자 그대로 대입 자격을 판별하는 자격 고사를 통해, 대학이 학생 선발권을 가지고 대학 독자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이 그래도 낫지 않을까.
고교 내신성적 반영 비율, 본고사 실시 여부, 심층면접 시행 방법 등을 아예 대학 자율에 맡기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과외 열풍이라는 함정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내신 비중을 높인다 해서 과외가 근절될 것인가 하는 질문의 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지 못할 바에는 한 마리라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청소년들, 그들의 잃어버린 추억이 서글프기만 하다.
그리고, 어른됨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