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부모의 사이는 대부분 의례적인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학생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의도적인 관계라지만 심도(深度) 있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인간적인 신뢰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서로 믿고 감사하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올바른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가 정립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이라기보다 혹시나 조그마한 약점이라도 잡히지 않을까? 조심하고 삼가고 눈치 살피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을 툭 털어놓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자녀 문제를 진지하게 상의하는 사이여야 하는데...,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자기 자녀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일방적인 편견을 가지고 선생님을 만나고 있다.
학생들의 생각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자기에게 조금 편하게 잘 대해주면 마음씨 좋은 선생이라고 하고, 조금만 까다롭게 굴면 당장 안색이 달라진다.
자기 자녀의 편향된 잣대로 선생님을 만나려고 하니 어색하기도하고 쑥스럽기만한 만남이라 하겠다.
나 역시 30년 동안이나 별의별 망나니들을 인간개조(?)해보겠다고 �e생들과 발버둥을 쳤으니... 얼마나 많은 갈등과 파찰음이 진동하였으며, 그 동안 별난 제자, 잘난 제자들은 말할것도 없이 잊을 수 없는 학부모님들도 엄청 많이 만났다.
그 중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잔잔하게 베풀어준 몇 분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직사회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깨뜨리고 신선한 사이로 발전된 특이한 경우, 즉 나의 체벌을 “관심이 없으면 꾸중도 체벌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긍적적이고 우호적인 학부모님 몇 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2회 마옥남군은 ‘영암․시종’ 바닷가가 고향이다. 학교 앞 비좁은 골목길 끝집에서 자취하는 가난한 농사꾼 아들이었다. 늦은 봄 어느날, 점심을 먹고 난 후 밀려오는 춘곤증을 이기지 봇하고 휴게실에서 잠시 오수(午睡)를 취하고 있는데 교무실에서 전갈이 왔다. 순박하게 생긴 중년부인이 면회를 오셔서 뵙기를 청한다고 했다.
바닷가 찬바람에 피부가 깡마른 중년부인이 쩍쩍 벌어지는 갈퀴 같은 억센 두 손으로 나의 손을 붙잡고 반갑게 흔들며 인사를 했다. 진즉 찾아뵙지 못하여 송구스럽다면서 선물꾸러미를 건네주었다. 영암 시종 찰진 개펄에서 갓잡은 숭어 두마리, 망둥이 대여섯마리, 맛조개 한되, 무공해 콩과 열무 두 단, 계란 한 꾸러미, 청자 담배 두갑, 제법 묵직한 선물 이었다.
집에 가지고 갔더니 좋앗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내의 환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교직생활 30년 동안 온갖 촌지(?)와 양주 등 고급 선물을 두루 받아왔지만, 그것을 누가 선물했는지 지금은 아리 송송 아무 기억도 없다. 그러나 26여년이 지났지만, 마군 모친의 선물은 두고두고 생각나는 고마운 선물이었다고 추억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며 마군은 지금 제주도에서 건설업을 한다는 풍문만 있어 안타깝다.
그 녀석을 만나게 되면 어머님께서 받은 은혜를 갚는 셈치고, 술 한 잔 후하게 대접해야 겠다.
20회 이현우군 10여 년 전 내가 1학년 학급 담임일 때 반장하던 녀석이다. 전교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을 수학공부 못한다고 체벌했으니..., 본인은 물론 학부모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아무튼 이군은 서울 법대를 거쳐 지금은 사법고시 2차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대학 수학 할 때도 선배동문들을 수소문하여 장학금을 몇 번 마련해 주었더니, 아직도 그걸 고마워하는 이군 부모님들과 인연을 계속이어가고 있다.
IMF이후 더욱 어려워진 이군 아버님은 틈만 나면 나에�� 연락하여 대폿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심지어 밝히기 어려운 가정사까지 자문을 구할 정도로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군 아버님은 지하상가 경비 일을, 어머님은 식당 잡일을 하면서도 졸업하진 10년이 지난 자식 담임을 위해 이른 봄에는 깊은 산골에서 취나물을 채취하여 가져다주지 않나, 내 후년이면 수몰될 장흥 유치 탐진가아 강줄기에서 잡은 무공해 다슬기라면서 양동이 째로 보내주지 않나, 기관지가 나빠 겨울나기에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배즙을 보내는 등등, 선생인 나를 자꾸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군이 내년에 사법고시에 최종합격하여 판검사로 임관하게 되면, 가나하고 안타깝고 서러운 사람들을 위해 드겁게 봉사할 것이라 확신한다.
9회 최훈군은 20연년전 1학년 때 나의 학급 반장이었다. 지금은 서울 대학출신 철학박사로 강원도 삼천대학 교수다. 부모님이 초등학교 부부교사였으나 지금은 정년퇴직하셨다.
1학년이 다 끝나갈 12월달에 여선생님인 최군 어머님이 멋지게 포장한 선물을 주셨다.
털실 조끼였다.
나는 그해 겨울 뿐만 아니라 10수년을 즐겨 입어 오다가 7년 전 광주에서 화순으로 이사하다가 그만 분실해버렸다.
뜨개질로 엮은 털실 조끼를 짜려먼 부부교사라 퇴근 후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시작하여 자정가지 뜨개질을 하였다고 해도 10여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 정성 그 마음 때문일까, “논리는 나의 힘”이라는 책을 쓴 철학 박사이자, 교수로 자식을 자랑스럽게 키웠다고 생각한다. 겨울 방학 동해안 여행 때 꼭 들러주시라는 교수 제자의 전화를 받고나니 마음이 매우 흡족했다.
자기 자식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면서 감동시키는 학부모의 때 묻지 않은 정성이야말로 이 시대를 변화 발전시키는 기폭제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