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들의 국민학생 시절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구슬이나 딱지, 혹은 고무줄이나 오자미 같은 놀이 기구를 비롯해서 필통,샤프펜,크레파스 등 학용품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드물게 피아노로까지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떨까. 컴퓨터라는 답이 압도적일 것 같다. 정보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우리나라 방방곡곡 아무리 궁벽한 산간 오지일망정 TV와 함께 컴퓨터 한 대 들여 놓지 못한 가정은 드물 것이다.
컴퓨터로 시작된 정보 혁명이 이제 신세대들 사이에 휴대전화로 이어지고 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많은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 중에서 이 둘은 모두 ꡐ관계의 완충지대ꡑ 역할을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이버 공간은 개인이 세상을 접촉하는 완충지대이다. 익명성을 보장 받은 ꡐ내ꡑ가 ꡐ또다른 내ꡑ가 되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몸은 정작 의자 앞에 못박혀 앉아 있어야 하는 곳, 텍스트의 시간과 컨텍스트의 시간이 충돌하는 곳을 사이버 공간의 특성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관계가 있되 관계가 없는 곳, 그래서 사람들의 넋을 앗아가는 곳이 바로 사이버 세계의 모습이다.
휴대전화의 경우는 관계를 맺는 대상이 컴퓨터보다는 훨씬 축소된다. 개인과 개인으로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다. 전화란 원래 목소리를 통한 소통의 기구인데도, 신세대들은 이를 ꡐ문자ꡑ를 주고 받는 통신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문자가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단순히 목소리를 대신하는 휴대전화의 문자는 소통의 또 다른 형태인 서신의 문자와는 개념을 달리한다. 이를 테면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완충지대인 셈이다. 따라서 그들이 사용하는 문자는 사회의 일반적 약속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곳, 문자가 아닌 문자로 의사를 표현하는 곳. 휴대전화 액정의 테두리 안이다.
ꡐ컴퓨터는 내친구!ꡑ를 부르짖는 청소년,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 메시지부터 확인하는 신세대. 그들은 딱지와 구슬, 오자미와 함께 더불어 나누는 호흡을 잃어버렸다. 신세대들에게 사람끼리 이마를 맞대고 체온을 나누는 일이란 낯설고 서툴기만 한 것이다.
완충지대에는 잡초가 무성하기 마련이다. 사이버 공간 안에서, 비좁은 액정 안에서 세상과 사람을 만나려는 신세대들의 가슴 속에는 외로움이 잡초처럼 자란다. 전원이 꺼진 컴퓨터의 깜깜한 화면이 빨아들일 그 헛헛함을 두려워하는 컴퓨터 폐인이 늘어나고, 소외의 본능적인 공포로 말미암아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문자 키를 두들기는 데에 마음을 빼앗긴 청소년의 모습들이 더욱 자주 눈에 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단말기를 바꾸면 그 외로움이 사라질까. 아니다. 결국은 인간이 기기에 종속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자녀들에게 새로운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선물하기 전에, 그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